미국에 도착한지 한달 반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공항에 도착해서 숙소로 이동하던 중 10여전 학업을 위해 미국에 왔을 때 유난히 많게 느껴졌던 학교 숙제를 소화해내느라 식사도 거른채 학교 도서관 안에 있던 식수대 물로 끼니를 대신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되살아났다. 어려서 집이 가난해 운동장에 있는 급수대에 작은 입을 대고 물로 배를 채웠던 기억과는 사뭇 대조적인 추억인 것 같다.
미국에 도착한 후로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10여년 전 학생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의 미국과 현지 사업을 위해 온 직장인으로서 바라본 미국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변화했는가, 또 그 변화의 차이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라는 점이다.
10여년 전 유학생 신분이었을 때 미국은 그야말로 거대함과 다양함 그 자체였다. 대형 할인 매장, 그리고 델과 아마존을 중심으로 한 온라인 상점들이 보편화되기 시작하였고 백화점에 가보면 없는 것이 없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시스템으로,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로봇을 보는 것 같았다고 할까? 그 후 10년이 지난 미국은 적어도 나와 같은 일반 소비자로서는 큰 변화를 찾기 어려운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롭게 느끼고 경험할 것들이 생기겠지만 현재로서는 10년 전과 별로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그 만큼 잘 정비되고 안정적인 사회조직이기에 그런 것일까?
그 동안 한국은 세계 3위의 인터넷 주소를 보유하고 초고속 인터넷망이 세계에서 가장 잘 발달된 국가가 되었다. 초고속 인터넷을 갖춘 카페가 500m 간격으로 늘어서 있고 대형 할인 매장과 온라인 상점은 아예 일상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학창시절 눈요기 거리로 충분했던 미국에서 더욱 발전된 변화를 기대했던 나에게 미국은 그다지 흥미로움을 제공해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내 한인들의 경제적인 위상이 높아졌다는 점은 과거 10년 전과 많이 달라진 큰 변화이다. 최근에 발표된 미국 연방 센서스 통계에 근거해 산출된 ‘재미 한인 경제의 규모와 구조’ 연구에 따르면 1999년 기준으로 한인들의 가구당 소득은 3만달러에 육박하고 있으며 경제 규모 면에서는 LA지역이 70억달러에 이른다.
우리 조상들이 배고픔을 이기고자 1903년 1월13일 하와이 호놀룰루 항에 내려 사탕 수수밭의 노동자로 일하기 시작한 이민의 역사는 56명의 남성, 21명의 여성 그리고 25명의 어린이 등 총 102명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는 한 세기만에 경제적인 위상의 큰 변화를 일궈낸 동시에 다음 한 세기를 준비하는 중요한 변화의 시점에 서 있다.
내가 알고 있고 경험하고 있는 미국은 크지만 잘 짜여진 거대한 아메바 같은 변화 조직이다. 일본의 유명한 전자 메이커인 교세라는 아메바 경영을 통하여 좋은 실적을 거둬왔다. 아메바는 주변환경의 변화에 따라 분열과 결합을 거듭하며 생존한다.
리더는 아메바라는 작은 규모의 공장이나 상점의 경영자가 되어, 자신들의 식솔들을 먹여 살릴 의무를 가지며, 작은 아메바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지혜를 짤 수밖에 없다. 긴급한 상황에서 초인적인 변화의 주역이 되기도 한다.
우리 한인들은 바로 아메바 리더로 자리를 잡아야 하겠다. 크지만 잘 갖춰진 거대한 아메바 같은 변화 조직에서 리더 아메바로 거듭 태어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변화에 순응하고 따라가는 적응력을 갖추어야 한다. 아울러 스스로 변화를 즐기고 치밀한 전략을 바탕으로 과감한 추진력을 발휘하는 것이 미국과 같은 거대한 아메바 조직에서 살아남고 리드 할 수 있지는 방법이 아닐까?
복준영
SK-어스링크 마케팅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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