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프로축구 리그라는 영국 프리메아 리그. 그 중에서도 최고의 클럽이라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최근 이적한 박지성. 평발이라는 신체적 한계와 언어 장벽을 넘고 세계 최고 축구선수 반열에 오른 그는 2002년 월드컵 이후 또 한번 민족의 영웅이 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는 또 하나의 아시아 선수가 있다. 박지성보다 1년 먼저 입단한 중국의 덩팡저우 선수. 혹 박지성 선수가 이 중국 선수와 주전 경쟁을 펼쳐야 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팬들이 있다면 그것은 ‘기우’라고 필자가 확언해 드린다.
박지성은 노쇠한 맨유의 미드필드진을 보강하기 위해 구단과 퍼거슨 감독이 모셔온 선수이지만 덩팡저우는 맨유가 ‘중국 마케팅’을 위해 데려온 선수다. 비자 문제만 보더라도 박지성은 퍼거슨 감독이 직접 이민국에 보증인으로 나선 덕에 무리 없이 비자를 받았으나 덩팡저우는 아직 취업비자를 받지 못해 영국에서 고정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어서 정규 시합에는 맨유 선수로 나설 수 없다. 그저 장사의 먹이감이 된 이 중국선수를 보고 있노라면 측은지심마저 든다.
이에 맞추어 얼마전 박지성 선수의 고향 수원시에는 ‘박지성 길’ 개통식이 있었다. 박지성 선수가 2002 월드컵 포르투갈 전에서 그림 같은 골로 16강 진출을 확정 지어 주었고 최근 유럽에서의 활약으로 국민들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수원시 뿐 아니라 전국에 모두 ‘박지성길’을 만들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박지성길’ 관련 기사를 읽으면 읽을수록 필자는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수원시에 ‘정약용길’은 있는가? 왜 ‘박지성길’ 개통식에 박지성 선수보다 도지사의 얼굴과 이름이 더 많이 나오고 언급되는지? ‘박지성 길’ 개통식에서 박지성 옆에서 호가호위하고 있던 정치인들의 웃음을 보고 이들이 박지성을 정치 마케팅용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인상은 더욱 확실해졌다.
한국은 인터넷 보급률 1위 국가답게 모든 분야에서 누리꾼들의 힘이 드세다. 특히 정치판에서는 더욱 그러한 것 같다. 예전에는 장관이나 국회의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그들의 홈페이지에 찾아가서 마음대로 글을 남길 수가 있다.
덕분에 사회는 조금 더 투명해지고 정치인들은 국민을 더 생각해야하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부작용이 꽤나 큰 듯하다. 장기적인 국가 발전보다는 근시안적인 국민들의 눈치보기에 급급한 정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포퓰리즘이 기승이다.
아르헨티나를 보자. 아르헨티나는 볼펜과 버스, 헬리콥터를 세계 최초로 발명한 나라이고 19세기말에는 GNP가 스위스나 독일보다 높아 세계 7대 부국에 꼽혔을 정도로 부유한 나라였다.
그러나 1946년 페론이 집권하면서부터 이 나라의 운명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페론은 본인의 인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동자와 빈민의 눈치 보기에만 급급한 정책을 내놓았고 이는 국민의 분열을 초래하고 경제 성장 동력의 소진을 낳았다. 그 이후로 아직까지 아르헨티나 경제는 나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우리 대통령은 ‘친미 한국인은 미국에서 공부해 영어에 유창한 한국인을 가리킨다’라고 했다고 한다. 지미파(知美派)와 엘리트에 대한 맹목적인 반감을 조장하여 대중의 인기를 본인들 쪽으로 몰아오려는 극히 근시안적인 행동들은 아닌지?
축구는 가장 단체성이 강한 운동이다. 모든 선수가 인기 있는 플레이를 하길 원한다면 팀은 절대 이길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나라 정치인들은 축구부터 배워야 한다. 그리고 축구가 뭔지도 모르면서 우리의 영웅을 마음대로 휘두르지 마라. 박지성은 덩팡저우가 아니다.
김영무
세계 은행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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