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짓는 연기로 자욱한 어느 산골 마을 교정. 교장 선생님과의 면담을 기다리며 둘러본 작은 교정은 100 학급이 넘는 대도시에서 교육을 받은 내게는 너무도 아름답고 정겨워 그곳에 그냥 그렇게 반해버렸다. 내 교직의 길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순수했던 아이들과의 사랑의 교감이 너무도 똑똑해져만가는 21세기형 아이들과의 만남으로 시들어져가기 시작할 무렵 나는 미국 이민을 결심하게 되었다. 당시 미국에서 수학 중이던 세 딸과의 삶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그들을 위해선 이것이 최선이라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택한 이민 생활이었지만 미국에서의 내 생활은 내 존재의 무의미와 허무감뿐이었다. 이렇게 무력감에 빠져있을 무렵 나는 한국어 교육에 많은 관심과 소명의식을 갖고 계시는 글렌버니 영광 장로교회 김선만 목사님과 영광 한국학교를 만났다.
모국어를 모르는 2세들을 교육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자긍심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기꺼이 한국학교 교장 일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보람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흐뭇함과 학급당 4-5명으로 이상적인 교육활동을 할 수 있게 되어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 같았던 내 생각이 정확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한국어를 꼭 배워야겠다는 내적인 동기유발이 부족한 아이들, 같은 또래이면서도 수준이 너무도 다른 아이들. 한국어 교육에 대한 부모님의 소극적인 생각들. 모국어는 꼭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아니고 ‘잘 할 수 있으면 좋다’ 정도의 생각들. 그리고 우리 이민사회의 기이한 언어 습관들. 예를 들면 부모님들은 한국어로 묻고 대답하고 아이들은 영어로 묻고 대답하는 식 말이다. 아이들이 들을 수 있다면 말할 수도 있을 텐데. 부모님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지도한다면 말이다
모든 교육의 시작은 부모님이다. 부모님이 가장 훌륭한 우리 아이들의 스승이다. 그 스승은 아이들이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교육하되 그들이 못 보는 앞선 세상을 미리 보고 안내해 주어야 좋은 스승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우리는 가난을 떨치려고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녀교육을 위해 미국 이민을 택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아직도 부모님들의 사고 저편엔 우리는 가난한 나라라는 19세기형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빨리 자녀들을 확실한(?) 미국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머지 않은 장래에 여러모로 손꼽히는 민족이 되어 세계 속에 우뚝 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데 어찌 모국어 교육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논리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은 결론을 안다.
얼마 전 미국의 디스커버리(1994년 6월호)에서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라고 극찬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또 언어학자 제어드 다이어먼드는 한글은 가장 과학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어서 지식의 확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문자라고 극찬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한글의 우수성, 곧 우리 민족의 우수성이다.
결론은 모국어를 잘해야 저력있는 한국인으로 떳떳하게 이민생활을 가치있게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어를 잘하면 영어를 못하게 된다든가 영어를 잘하려면 한국어를 못하게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어 교육에 빼앗기는 시간과 노력을 아까워 말아야 성공적인 이민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박소주/ 영광 한글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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