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팍스, ‘인권운동의 어머니’라고 불렸던 그녀가 생을 마치면서 우리들에게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다면 무엇이었을까 자못 궁금하다.
로자 팍스는 미국 인권운동의 큰 물꼬를 튼 1955년 12월 1일 ‘버스좌석 양보 거절’ 사건의 주인공이 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인권운동의 밑바탕에 흐르는 ‘인간 존엄성’의 숭고한 정신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녀는 흑백이 분리된 농촌학교에서 초등교육을 받았으며 1924년에 학생 모두가 흑인이었던 몽고메리 사립 여자 산업학교에 입학했다. 그녀는 ‘로자 팍스: 나의 이야기’라는 자서전에서 자신이 이 학교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나는 존엄성과 자긍심을 지닌 한 인간이며 단지 내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나의 눈높이를 낮게 잡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한때 로자 팍스를 사무처 직원으로 고용했던 연방 하원의원 존 코니어스의 말을 들어보면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더욱 분명해진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 설명하거나 가르치길 원하고 있지만 정작 그녀는 그런 것들에 전혀 관심이 없고 오히려 그러한 사람들이 정부나 그들의 인권 및 헌법에 대해 좀 더 이해를 높이기를 원했다”고 그는 전한다.
인권향상을 위한 로자 팍스의 행적들은 말할 것도 없이 높이 살만하다. 하지만 그녀의 주된 관심사는 자신이 어떤 운동을 했다는 것보다 그 운동의 밑바탕에 깔린 정신이 무엇이었느냐를 더 강조하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한마디로 그녀가 남긴 정신은 ‘인권을 존중하자’라는 것이다.
이는 그녀가 가버린 지금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인종차별을 개선하려는 로자 팍스와 같은 인권운동가들의 희생과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 한인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미국 땅으로 이민을 오려고 엄두를 냈겠으며, 지금도 이 땅에서 계속 살아가길 원하고 있겠는가를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우리 한인 이민사회는 흑인들이 벌여 온 인권운동의 덕택을 톡톡히 보고 있는 수혜자 중 하나이다.
이제 우리도 빚진 것을 갚아야 할 때다. 아직도 미국 사회 곳곳에 알게 모르게 처져 있는 유리벽과도 같은 인종차별의 벽을 깨기 위해 한인사회가 노력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인권을 존중해주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다.
인권을 침해당하는 피해자의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이를 보호해줄 수 있는 위치에 선 자의 입장에서도 ‘인권을 존중하자’라는 정신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우리 한인사회가 동등하게 이 미국 땅에서 취급받기를 원하는 만큼 그에 합당한 노력과 희생으로 다른 이민사회들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특히 한인 사업체들이 피고용인들인 타인종들의 인권과 권리를 침해하는 일들은 도를 넘어선 듯 하다.
우리 한인들이 밤잠 설치면서 쉬지 않고 일구어 가는 이민 현장, 누가 보더라도 칭찬할만하다. 하지만 내 이해관계를 채우고자 더 이상 남들에게 부당한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내 인권이 소중하듯이 남의 인권도 그에 못지 않게 소중한 법이다.
안성중/워싱턴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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