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때 내 짝이 큰 눈을 굴리며 선생님도 변소 가시더라고 했다. 설마 하고 내가 믿지 않으니까 내 짝은 다음 날 선생이 계시던 변호 그 현장으로 나를 끌고 갔었다. 우리 산장에 오시는 분들 중에는 시인인 나를 보고 싶어한다. 그런 분들이 나에게 “시인이죠?” 라고 물으면 “죄송해요 시인답지 않아서요”라고 대답한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상상세계가 있다. 시인을 어떤 그림으로 상상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이 기대하는 시인의 모습과 품위에 못 미치는 나는 그 앞에서 위축되고 부끄러워진다. 내가 순진해서 선생을 보통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처럼 “시”와 시인들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각박한 현실에서도 순수한 분들이라 생각한다.
그럴 적마다 나는 갈등한다. 이게 뭐야, 특히 바쁜 주말이나 공휴일 때면 선탠 크림으로 분장한 얼굴에 찌든 모자를 눌러 쓰고 허름한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를 걸치고 사나운 경비원 눈으로 사람들의 동태를 살피며 구석구석 다니면서 잔소리를 하고 계산대로 가면 은행창구처럼 돈을 따지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와 껄끄러운 영어로 대드는 이 거센 아줌마에게서 어찌 고상한 품위의 여류시인 모습을 찾겠는가!
우리 아버지는 국어 교사가 되려면 국문학을 전공하고 문인이 되려면 그만 두라고 하셨다. 당시 문학은 현실적이지 못한 사고방식과 비생산적인 노력으로 취급받았고 가정적이지 못하고 술을 좋아하며 생활에 모범적이지 못했던 문인들의 이미지 때문에 딸이 그런 사람들과 어울릴까 염려하셨던 것이다. 그때 내가 시집을 읽으면 아버지는 성경 신구약 보다 더 좋은 책은 없고 시편이나 아가 보다 더 아름다운 시는 없다며 고운 눈으로 보시지 않으셨다.
나는 시를 좋아했지만 시인이 될 만한 실력도 없었고 부모님 반대도 있어서 나는 일찌감치 시인되기를 포기했었다. 그러나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은 언제라도 나온다”라는 속담처럼 끝내 시인이 되고 말았다.
많은 시인들이 문단에 등단 할 때 소감을 “시”만을 위해 살겠다고 공언하고 어떤 선배 문인들은 “문학”에 목숨 걸고 종교로 삼는다고도 한다. 그런데 나는 한번도 “시”를 내 생활에서 제일로 삼아보지 못하고, 좋은 작품도 없어 나를 등단시켜준 문학사상에 늘 죄송스럽다.
왜냐하면 나는 크리스천이어서 세상 그 무엇도 나의 종교가 될 수 없고 엄마 아내라는 막중한 책임과 내 건강도 챙겨야하고 지금은 사업까지 하고 있기 때문에 문학만을 위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성문인의 글쓰기를 취미라고 하면 실례가 될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나에게 선배들은 “시”를 경시한다고 핀잔을 준다. 그러나 나는 일상에서 시를 떠난 적 없고 시시한 “시”라도 계속 쓰고 있다. 예전에는 문인들의 부적절한 사생활도 예술의 권위로 많은 이해를 받았었다. 그런데 요즘은 문인들의 인격과 모범 생활 강조가 문학지에 권두어기 될 만큼 중요시 되고 있다. 즉 문학의 현실성과 문인들의 작품에 대한 책임 강요가 아닐까?
“시”는 구름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닿아 우리 생활 속에 머물면서 삶의 지혜가 되어 고통에 위로와 고독의 벗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일과를 마치면 태양이 지쳐 보랏빛 노을로 물러서고 잠시 어둠이 잠식하지만 곧 하나 둘 볕들이 쏙쏙 얼굴을 내 밀기 시작한다. 나는 별들에게 고백한다. “나 오늘도 정말 웃겼지?, 내가 무슨 시인이라고 난 가짜 시인이야”라고.
밤은 점철된 뇌를 헹궈 줘서 좋다. 그 밤이 아침을 부축해서 일으키면 엄숙한 고요가 나를 훈계한다. 새벽에 산장을 산책하며 “오늘은 시인같이 좀 예쁘게 살아야지” 라고 중얼거리면 토끼들은 앞발 들고 만세를 부르고 산새들은 “매일 하는 말이잖아 두고 보자”라며 지지배배 내 흉을 본다.
이성호 시인·RV 리조트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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