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을 함께 넘나든 전우애는 반세기를 넘기고도 식지 않았다. 아득한 세월을 흘러보내며 역사에서도 잊혀지고 있지만 이들의 우애는 세월의 두께만큼 짙어간다.
한국전 당시 이북 출신 민간인으로 구성돼 북한군에 맞섰던 ‘8240 유격대’ 출신들이 워싱턴지역에서 50여년 만에 만나, 가슴에 담아왔던 전우애를 다시 지피고 있다.
지난해 11월 창립된 한국 유격군 전우회 총연합회 워싱턴지회는 매달 부부 동반으로 모임을 가지며, 유격대 시절 얘기꽃을 피운다. 신중근 회장(76)과 장덕기(73) 총무, 신중민(73), 장규태(72), 전용선(72), 이만재(71) 씨 등은 서해지역에서, 이순재(71)씨는 동해지역에서 각각 활동했다. 이중 신 회장과 신중민씨는 고향도 같고, 같은 부대서 근무한데다 이름까지 비슷해 형제처럼 지내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이북이 고향으로 1951년 1.4 후퇴 당시 인근 섬으로 피난 갔다가 유격대에 참여했으며, 이후 미군으로부터 무기와 식량을 보급 받으면서 북한군을 상대로 한 무력항쟁을 시작했다.
22일 글렌데일 소재 장규태씨 자택에 모인 이들은 틈틈이 종전 후 이들이 겪은 홀대에 대한 울분도 털어놓았다.
미 8군의 지휘 아래 서해와 동해에 30여개의 지부로 활동하던 이들은 전성기 때 3개 사단에 해당하는 4만여명의 병력이 활동했다. 이들은 전쟁 당시 열악한 환경과 부족한 보급 속에서도 정보 수집과 적 보급로 차단, 적진 침투 등을 수행했으며, 피격된 미군 전투기 조종사의 1/3을 구출하고, 6만9,000여명의 적군을 사상하는 눈부신 활약을 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이들 중 일부만 육군에 편입됐으며, 나머지는 군번도 부여받지 못한 채 방치됐다. 전쟁 중 희생자는 잊혀졌다. 육군에 편입된 자들도 기존 이남 출신들의 텃세와 차별로 설움을 겪었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청춘을 계급과 군번도 없이 목숨을 바쳤지만 한국과 미국 모두에게 버림받은 이들에게 보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들을 지휘했던 더글러스 딜라드 예비역 대령이 한국에서의 보상이 여의치 않자 미국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한다. 이날 모임에 딜라드 대령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부인 병환으로 불참해 아쉬움을 남겼다.
워싱턴지회원들은 모두 6.25 참전 유공자회 및 재향군인회 미동부지회 회원들로 이들 단체의 입회원서를 통해 신상이 파악돼 서로 연락을 갖게 됐다. 지난해 한국 유격군전우회 총연합회장의 방미를 계기로 정식 조직을 결성했다.
이들의 애국심 또한 전우애 못지 않다. 청춘을 불사르며 지켜낸 조국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아직 연락이 닿지 못한 이 지역의 전우를 찾고 있다며, “꼭 연락바란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연락 (410)772-8547, (30 1)989-0205. <박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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