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퍼 밀어붙이기가 무위로 끝났다. 쉐퍼 감사원장을 전방위로 압박, 공개사과를 이끌어내려던 전략은 수정됐다.
22일 열린 한인 대책위원회(위원장 신근교) 회의에서는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를 택했다. 주류신문에의 투고를 통한 여론의 환기, 정치력 신장이 결론이었다. 사실상 원점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같은 전략적 후퇴는 대책위로서는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을 것이다.
상대는 볼티모어 시장에 두 차례나 주지사를 역임한 메릴랜드의 정치적 거물이었다.
현재 맡고 있는 감사원장 직도 메릴랜드주의 세금을 총괄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직책이다. 그 반면에 한인사회는 정치적 신장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변방의 소수일 뿐이다. 6-7만의 메릴랜드 한인 인구에 투표자 수도 1만명을 넘지 않는다. 9월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3선에 도전하는 쉐퍼의 정치생명을 좌지우지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이다.
쉐퍼가 사과를 거부한 것도 “니들이 떠들어 봐야 내 발가락 하나 못 건드린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론‘쉐퍼 죽이기’에 나설 경우 야기될 수 있는 주류사회의 역풍에 대한 우려도 작용했다.
미국사회의 근저에 이민자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는 가운데 자칫 쉐퍼와의 싸움이 감당할 수 없는 사태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한인사회의 역량의 한계에다 주류의 반공(反攻) 가능성에 직접적인 공세를 거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다 이번 사태의 대응과정에서 노정된 한인사회의 분열상도 한몫 했다. 장두환 전 메릴랜드 실업인협회장 같은 이는 공공연히 쉐퍼의 입장을 두둔하고 나섰다.
쉐퍼와 일전을 겨루는 면담시에도 삐걱거렸다. 한기덕 메릴랜드한인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공동 성명서 초안 채택을 놓고 절차상의 문제가 불거졌다.“한인사회 대표들이 참가하는 면담인데 성명서에 대한 사전 협의가 전혀 없었다”며 제동이 걸린 것이다.
한인 대표들이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자 쉐퍼가 “한인사회는 의견부터 통일하고 오라”고 큰소리 친 것도 바로 여기서 연유한다.
대책위로서도 더 이상 단일전선을 형성, 쉐퍼를 압박하는 것은 힘들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너무 성급하게 포기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우선 메릴랜드의 여론이 한인들 편에 기울었다는 점이 거론된다.
볼티모어 선, 워싱턴 포스트 같은 주류 언론들이 쉐퍼의 망언에 비판적인데 이어 지역 정치인, 단체들도 반(反) 쉐퍼 기류에 가세하고 있다.
바바라 미컬스키 연방 상원의원은 “한인사회는 메릴랜드와 미국의 각 분야에서 놀라울 정도의 기여를 해왔으며 쉐퍼 감사원장의 깔보는 발언을 듣고 당황스럽고 실망했다”는 메시지를 대책위에 보내왔다. 다른 소수계와 전미여성연합같은 단체도 반 쉐퍼 분위기에 동조하고 있다.
한 전직 한인회장은 “아직까지는 여론이 한인 편에 있는데 너무 일찍 싸움을 접었다”며 “힘들지만 연대와 주류사회 설득을 통해 최소한의 성과라도 올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전략의 빈곤도 지적된다. 정치적 거물을 상대로 한 싸움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한 단체장은 “처음엔 기세등등하게 쉐퍼 죽이기에 나섰다가 사과를 거부하자 바로 꼬리를 내리는 꼴”이라며 “애초에 싸울 의욕이 없었든지 싸움의 기술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종국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