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베키 벨크(39)는 5세 이하의 세 자녀를 둔 어머니다. 그녀는 LA의 법률회사에서 일한다. 다른 동료들은 밤늦게까지 일하고 주말도 희생하기 일쑤다. 벨크는 매주 3일 일한다. 회사에서 파트너가 되는 생각은 꿈에도 꾸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이 많이 변했다. 자녀를 돌보면서 전문지식을 활용하도록 배려하는 회사들이 점점 늘고 있다. 그리고 기회도 많이 준다. 자녀들이 성장한 뒤 회사 일에 전념한다면 언제든지 파트너 트랙에 올려놓을 것이라고 약속하는 회사들도 있다. 능력만 된다면 말이다.
종전 야근·주말 근무 등 제약으로 불이익 다반사
포천 500대 기업 CEO 가운데 여성 고작 11명
벨크는 “만일 일주일 내내 집에서 아이들과 씨름한다면 무척 답답할 것이다. 그리고 매일 직장에 나와 일을 해야 한다면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 지금과 같이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어린 자녀들을 돌볼 수 있어 무척 행복하다고 했다.
지금까지의 관례에 따르면 커리어우먼이 임신을 하거나 자녀를 돌볼 처지에 놓이게 되면 고위직에 올라갈 기회를 박탈당했다. 회사 일에 전력투구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특히 법률회사에서 파트너십을 따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이제 변호사, 약사, 의사, 재정상담가 등 직종에서는 전문 여성들에게 적절한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 증가하고 있다. 업무시간을 조정해 주고 자녀를 잘 돌볼 수 있도록 각종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이들의 재능을 사장시키지 않고 어떻게든 회사 발전에 선용하려는 목적이다.
자녀 양육 때문에 몇 년간 휴직을 하고 복직해도 별다른 불이익을 주지 않고, 회사에 젖을 먹일 수 있는 휴게실을 마련해주며 멘토 시스템을 도입해 여성들의 육아와 커리어 관리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갖춘 회사들도 있다. 안식년을 주는 회사들도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성 경영인들은 “여자들도 남자들과 동일한 여건해서 경쟁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여성들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주는 쪽으로 추세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자 교수들에게 종신교수직 조건으로 7년간 10개의 논문을 출간해야 하는 규정을 15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제안도 있다. 육아 및 가사를 고려하자는 주장이다.
여성 우수인력 증가에 여성고객도 증가 ‘새 조류’
휴직 몇 년 뒤 복직해도 능력 따라 얼마든지 승진
의사·변호사 등 육아휴직으로 서비스 공백 우려도
이 방안이 어떠한 영향을 가져오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좀 더 기다려야 하지만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법과와 의과 졸업생의 거의 절반이 여성이다. 이들이 몇 년간 업무를 쉴 경우 그 후유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란 지적이다.
1997년 브렌다 반즈는 학교 다니는 세 자녀를 돌보기 위해 펩시콜라 북미디비전 회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화제가 됐었다. 그녀는 추후 다시 재계에 복귀해 사라 리의 CEO자리를 얻었다.
그러나 이는 극히 예외적인 일이다. 포천의 500대 기업의 여성 CEO는 11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지난 3년간 기업 간부직에 오른 여성은 전체 간부직의 16.4%에 불과했다.
2004년 법률회사의 파트너십 소유자 가운데 여성은 17%로 나타났다. 10년 전에는 13%였다. 의학 분야의 경우 종신교수직을 받은 여성의 비율은 약 18%로 지난 20년 간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1980년과 1990년대 꾸준히 증가하던 직장 여성들의 비율이 그 이후 지지부진한 것으로 집계됐다.
경제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2004년 성인 여성 가운데 직장에 다니는 비율이 75%로 지난 2000년의 77%에 비해 오히려 소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사와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여성들이 직장업무를 수행하는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기업들이 여성의 능력을 충분히 살리기 위해 남성들의 반감을 사더라도 과감한 배려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래야 여성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률회사 매냇, 플렙스 & 필립스의 파트너십을 갖고 있는 폴 어빈은 “대학 졸업생 가운데 남녀의 비율과 여성들의 실력을 보면 이들에게 적절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기업에게도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했다.
어빈은 또 커리어우먼들을 잘 관리해야 하는 이유로 고객들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들었다. 플렉스-타임 변호사 그룹의 창업자인 데보라 헨리는 “법률회사의 상담실에 백인 남성 변호사 5명이 여성 의뢰인과 앉아 있는 모습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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