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현 기자의 트렌드 따라 잡기
다들 묻는다.
“그렇게 많은 명품 브랜드를 쫙 꿰고 있는 걸 보면 그 브랜드 하나씩은 다 갖고 있는 거죠”
처음 질문을 받을 때는 황당하지만 질문 횟수가 늘어나면 나중엔 한숨이 이성적 사고를 앞지른다. 다는 고사하고 10%만이라도, 아니 다만 5%만이라도 내 옷장 속에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대답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세상사가 다 그렇듯 아는건 아는 것이고 소유는 소유일 뿐이니까.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메릴 스트립이 열연했던 미국 보그지의 안나 윈투어 편집장 정도나 입고, 걸치고, 신고 싶은 명품 브랜드들을 다 손에 쥐어볼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가당키나 한가. 만약 지식과 소유가 비례한다면야 세상 모든 여자들이 패션에 목숨걸고 고시 공부를 할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로 열연한 메릴 스트립. 세상 모든 옷을 입을 수 있는 ‘절대권력’의 소유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성관객들의 질시와 부러움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시니컬함을 뒤로하고 패션은 분명 매력 있는 분야임에 틀림없다. 대단히 소비지향적이지만 세계경제에서 빼놓고 말할 수 없는 분야임에 확실할 뿐더러 이를 소비하고 즐기는 소비자들의 패션 내공 싸움도 볼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패션의 화려한 앞모습 이면에 디자인과 경영을 위해 고군분투 사활을 걸고 한판 전쟁을 벌이는 이들의 뒷담화도 재밌다. 디자이너들도 인정하듯 해가 갈수록 패션 역시 디자인보다는 경영 쪽으로 그 무게가 옮겨지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런웨이에서 모델들이 걸친 컬렉션들은 소유하지 않고 보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하다. 무조건 내 옷을 팔겠다는 일념으로 유명 디자이너 반열에 등극한 이들은 없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할머니는 런던 엄숙주의에 찬물을, 믿기진 않지만 프라다는 밟히면 더렵혀질까, 앉으면 구겨질까 안절부절못하는 고급 여성복에 실용성과 질서를, 존 갈리아노는 여성의 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단순함이 얼마나 우아한지를 보여준다. 이렇듯 몇몇의 상업적 디자이너를 제외하고는 멋진 디자이너들은 기존 질서에 반기를 들고 전복과 저항을 담는다. 그래서 패션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그러고보면 ‘붓 터치를 보니 이건 고흐군’ ‘이건 전형적인 루벤스의 인물화인걸’ ‘램브란트의 자화상은 항상 뒷배경을 유심히 살펴야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어’ 등등의 미술감상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 물론 패션에서 브랜드 자체가 갖는 ‘단순무식’한 힘도 부정하진 않겠다. 현대의 소비는 어차피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다 보니 브랜드의 강력한 아우라가 소비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난해한, 공감하기 힘든, 절대 입을 수 없는 하이 웨이스트 바지, 결코 신지 못할 웨지힐이라도 ‘음, 이건 전형적인 클로에군’ ‘역시 발렌시아가야’라며 끄덕끄덕. 누군가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디자인 앞에서조차 ‘브랜드의 역사와 브랜드의 시그니처 스타일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폼을 잡기도 한다.
그래서 단언컨대 티파니는 하늘색 박스와 하얀 리본 때문에 생각지도 않는 매출을 올리기도 하지 않겠는가. 속에 든 내용물이 아니라 포장만으로 환호하는 여성들의 호감을 얻기 위해 남성들이 기꺼이(혹은 울며 겨자 먹기로) 지갑을 열기 때문에 말이다. 이미지와 실체 사이. 패션을 소비하는 이들의 영원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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