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
무엇이든 ‘좁다’는 것은 불편하고, 부족하고 고생스럽다는 느낌을 준다. 어린 시절 시골 할아버지 댁에 내려가면 낮은 처마 밑에 난 좁은 방문으로 들어가다 으레 이마를 찧었다. 그리고 시골 마을에서 읍으로 나오는 길은 대개 좁다랗고 가파른 산길이어서 자칫 깊은 물 속으로 떨어질 위험이 많았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좁은 산길을 갈 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날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면서 자랐다.
좁은 길은 한 눈 팔며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정신 내놓고 걷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꺼리고 피한다. 사서 고생하기 싫기 때문이다.
그러나 넓은 길, 넓은 문은 널찍하게 트여 우선 답답한 체증이 확 풀리는 느낌이다. 거침없이 장난치며 뛰어다닐 수도 있고, 많은 사람이 함께 어울려 떠들썩하게 떼거리를 이룰 수도 있다. 술 취한 상태로 이러 저리 갈지자걸음을 걷는다 해도 위험할 일이 없다. 기껏 잘못되어 넘어져도 흙투성이 털고 일어나면 그만이다.
정신 내놓고 장난치며 걸어갈 수 있는 것이 넓은 길이며, 한눈 팔고 뛰어다녀도 문지방에 이마 찧을 일이 없는 것이 넓은 문이다. 그래서 넓은 길, 넓은 문은 많은 사람들이 드나든다. 더욱이 ‘군자는 대로행’이라 하여 큰길을 폼을 잡고 팔자걸음으로 남보란 듯이 나다니는 것을 삶의 이상으로 삼아온 우리에게는 ‘좁은 문’의 개념이 익숙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는 하필 ‘좁은 문’으로 들어오라고 우리에게 권고하시고 계신 것일까? 쉽고 편한 길 대신에 힘들고 고생스러운 길을 걸어서 당신께 오라고 말이다. 분명 좁은 문의 의미가 정신차려야만 드나들 수 있는 문이며, 이것저것 욕심사납게 들쳐 메고는 쉽사리 들어갈 수 없는 문이기에 우리는 그분의 뜻을 찾아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성서에서 말하는 ‘좁은 문’은 공간적인 의미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넓은 문도 팔자걸음으로 활개치며 드나들던 형상적인 의미가 아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문은 ‘마음’의 문이며, ‘영성’의 문이다. 스스로 낮아지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고, 스스로 작아지지 않으면 결코 통과할 수 없는 문이다. 그렇기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단 한가지, 스스로 작아지는 법뿐이다.
작아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문지방에 이마를 찧지 않으려면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야만 한다. 좁은 문은 ‘마음의 문’이어서 마음을 낮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지, 그리하여 진선미 자체이신 창조주 하느님 앞에 고개를 들 수 없는 죄인일 수밖에 없는 벌거벗은 자신으로 설 때, 그의 고개는 숙여지고 허리는 굽혀지게 된다. 한치 앞의 운명조차 알아낼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을 때 스스로 작아지게 된다는 뜻이다. 창조주 앞에 자비를 청하고, 이웃 앞에 겸손한 마음이 될 때, 그는 마침내 작아져서 구원의 좁은 문을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런데도 제 잘난 맛에 뻐기고 뽐내다가 불원간 이마를 찧어 피가 터지고, 좁은 문에 끼어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불쌍한 처지가 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이런 철부지이기에 자기 스스로 도저히 작아질 수 없다고 여기시면, 급기야 때로는 병으로 볼품없이 만들어 버리고, 망한 사업으로 허망한 꼴을 당하게 허락하신다. ‘스스로’ 작아지지 못하기에, 아깝지만 할 수 없이 톱으로 자르고 대패로 문질러서 작게 만들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원죄로 높은 담이 쌓여 들어갈 수 없는 천상낙원의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단 하나 문이기에 ‘좁은 문’이다. 유일하게 하느님의 외아들이 당신의 ‘비싼 피 값’을 치르고 세운 문이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그 문으로 들어가려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있는 힘을 다하여라” 하신 것 아니겠는가.
김 재 동 <의사·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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