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대통령 선거에 나선 공화당의 미트 롬니 전 매서추세츠 주지사와 존 매케인 상원의원, 민주당의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에게는 두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는 이들이 44대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지난 두어달 사이에 세 명 모두 주요 쟁점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바꿨다는 점이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지의 보도에 따르면 공화당 소속이면서도 낙태를 적극 지지해 온 롬니 전 주지사는 대권 도전을 선언한 직후 반대로 급선회 했고 네바다주 유카산에 핵폐기물을 비축하는 계획에 찬성했던 에드워즈 전 의원 역시 기존 입장을 180도 수정했다.
이들의 태도 변화는 예비 선거를 의식한 포석이다.
초반 여론조사에서 예상외의 강세를 보인 롬니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예비 선거를 치르는 뉴햄프셔와 남부의 전략 요충지인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보수 표를 잡기 위해 낙태 지지에서 반대로 돌아섰다. 예비선거 초반에 기선을 잡아 막판까지 버틸 추진력을 확보하려는 전술이다.
2004년 대선에서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나섰던 에드워즈 전 의원이 말을 바꾼 이유도 네바다주가 코커스 일정을 앞당긴데 따른 대응전략이다. 민주당 후보들 가운데 힐러리 클린턴과 배럭 오바마 상원의원에 이어 지지율 3위를 기록 중인 그에게 예비선거에서의 초반 부진은 조기 탈락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비 선거를 조기에 실시하는 주 가운데 자신에게 우호적인 곳을 반드시 장악해야만 반전의 기회를 엿볼 시간을 벌 수 있다.
매케인 의원은 2000년 이후 줄기차게 에탄올이 자동차 대체연료로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해왔으나 아이오와 주의 광대한 옥수수 밭을 의식해 최근 입장을 수정했다. 아이오와는 뉴햄프셔와 함께 전국에서 가장 먼저 예비선거가 열리는 곳이다. 지지율 부진으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그에겐 초반 탈락의 수모를 피해갈 비책이 절실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노선 수정이나 태도 변화는 상당한 위험을 수반한다. 뚜렷한 소신과 일관성 없이 표를 따라 우왕좌왕하는 ‘갈대 정치인’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들의 말 바꾸기와 입장수정 전력은 검증과정에서 유권자들이 가장 세세히 들여다보는 항목이기도 하다. 따라서 선거판에서 기존 노선을 바꾸는 것은 정치생명을 건 도박이라 할 수 있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일관성 없는 행동을 일컬어 flip-flop이라 하는데 이 단어는 정치인들이 상대를 공격할 때 가장 자주 동원하는 어휘 가운데 하나다. 2004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민주당 후보인 존 케리 상원의원을 flip-flop의 표본어로 몰아붙여 톡톡히 재미를 봤다.
당시 케리 후보는 불붙기 시작한 반전 정서에 호소할 요량으로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전 실책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그러나 부시 진영에서는 개전 초 케리 의원이 870억 달러 규모의 전비지출법안에 찬성표를 던진 사실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그를 무소신 정치인으로 몰아붙였다.
이 전술은 대테러전에 초지일관의 자세를 유지한 부시 대통령과의 케리 후보를 극적으로 대비시키는 효과를 가져왔고, 결국 민주당 측은 백악관을 탈환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한번 결정한 일을 결코 번복하는 일이 없다는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에서의 상황변화를 무시한 채 무조건한 ‘노선 유지’를 고집하다 30%의 낮은 지지율에 허덕이는 무기력한 지도자로 추락하고 말았다. 신축성을 결여한 일관성은 경직일 뿐이며 일관성이 없는 신축성은 무원칙으로 둘 모두 유권자들의 외면을 자초한다는 사실을 그가 유감없이 보여준 셈이다.
이강규 국제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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