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CC는 풀타임 직원의 30%가 타인종이 차지할 정도로 인종화합면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오른쪽 세 번째가 송정호 관장. <이승관 기자>
1994년 3월 김봉환 관장이 LA 폭동과 노스리지 지진으로 인한 한인피해자 지원을 정부에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한인’울타리 넘어 다인종 봉사 단체로
한인청소년 회관은 1975년 한인청소년 회관(KYC; Korean Youth Center)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첫 활동을 시작한 이래 두 차례 단체명을 바꿨다. 1992년 4월 LA 폭동을 계기로 한인사회에 보다 깊이 관여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사명감과 시대적 요구로 인해 1993년 KYCC(Korean Youth & Community Center)로 바꾼 것이 첫 번째였고, 코리아타운의 다인종·다문화 현상이 속도를 내면서 한인사회를 뛰어 넘어 모든 주민들을 위한 비영리 봉사기관이란 역할 증대에 맞춰 2005년 ‘Korean’ 대신 ‘Koreatown’이란 단어를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의 약 30%가 이미 타인종으로 채워져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 ‘한인청소년 회관’은 이미 한인은 물론 타인종까지 어우리는 비영리기관으로 성장했다.
폭동후 활동영역 확대
저소득층 아파트 개발
안정된 재정 큰 버팀목
차세대 인력확충 나서
1988년 한인청소년 회관은 제인 김씨 후임으로 김봉환씨를 새 관장으로 맞으면서 새로운 변모를 시도하게 된다.
1.5세로 동부지역에서 성장해 보스턴 칼리지를 졸업한 뒤 북가주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한 베이 지역에서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시설 지원 활동을 펼쳤던 그는 제인 김 관장 시절 회관건립위원회가 사들인 윌셔와 윌튼 인근 주거지(986 Ingraham St.)를 저소득층 아파트 및 청소년 회관 시설이 함께 들어서는 복합건물로 개발하기 시작, 1994년 완공했다.
이곳(주소도 680 S. Wilton Place로 바뀌었다)은 현재 청소년 회관이 운영하는 프로그램 가운데 100여명의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인 가정 서비스 센터(Children & Family Service)로 이용하고 있으며, 저소득층 19가구가 입주해 살고 있다.
김 관장은 재임 중 1992년 4월 LA폭동과 1994년 1월 노스리지 대지진을 겪으면서, 그동안 한인 청소년에 집중됐던 업무 영역을 타인종으로 돌리고, 경제 이슈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다.
특히 폭동 직후 한인청소년 회관은 갑자기 늘어난 정부 및 민간단체 지원금으로 때 아닌 풍족함을 누리기도 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연 예산이 80만달러 내외였으나, 폭동 직후에는 갑자기 200만달러로 늘어난 것.
그는 이 자금을 이용, 폭동으로 일터를 잃은 수많은 한인 자영업자들을 위해 경제개발 프로그램을 만들어 스몰비즈니스 활성화를 위한 정부지원, SBA 융자 안내, 고용 및 취업 지원사업 등을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의 ‘아태 스몰비즈니스 프로그램’(Asian Pacific Island Small Business Program)으로 한층 업그레이드돼 운영중이다.
또 이 때부터 환경문제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 낙서 지우기는 물론 나무심기 등 환경미화 활동에도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이와 함께 타인종 단체들과도 관계개선에 나섰고, 93년에는 명칭을 일부 바꿔, 커뮤니티(community)란 단어를 넣으며 활동영역을 한인사회 전반으로 확대해 나갔다.
이 때문에 일부 1세 단체들로부터 청소년 단체가 왜 한인사회 일까지 관여하느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아무튼 폭동과 지진은 1.5-2세단체들이 서로 힘을 모으면서 각기 서로의 역할과 특성을 보다 분명히 하는 계기가 됐다.
1998년 9월 김봉환 관장의 뒤를 이어 10여년간 이곳에서 근무하던 송정호씨가 관장으로 취임한다.
송 관장은 청소년회관 운영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시스템 강화작업에 착수, 운영과 관리체계를 개선하고 안정적인 재정확보에 나섰다. 이같은 배경에는 전임 관장이 키운 외형적인 성장에 걸맞는 조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이와 함께 타인종 인사들을 이사로 전격 영입하기 시작했다. 또 단체명에서 한인(Korean)이란 단어 대신 코리아타운(Koreatown)으로 바꾸며 광의의 상징성을 부여했다.
한인만을 위한 것에서 탈피, 모든 인종을 아우를 수 있는 단체로 거듭나야 새로운 차원의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현실을 간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이사진은 진 임씨, 강석희씨, 대니 임씨, 샤론 루크씨, 대니얼 김씨, 에드 파이씨, 라울 버스티요씨, 데이빗 김씨, 프랜시스 박씨, 에드워드 김씨, 폴 김씨, 니타 송씨, 마리사 카스트로 살바티씨, 케일린 김씨, 민 김씨 등으로 구성돼 있다.
송 관장은 이같은 노력은 상당한 결실을 맺었고, 특히 재정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게 된다.
주요 재단 및 기업체들로부터의 기금확보가 늘어나면서 그동안 전체 재정 소스의 80%를 차지하던 정부기금 비율을 55%로 줄였다. 이는 예산적자 때 큰 폭으로 감소하는 특성을 가진 정부기금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180만달러 수준이었던 재정은 현재 400만달러대로 크게 증가했으며, 이는 한인청소년 회관이 대규모 사업들을 진행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송 관장의 이같은 변신 노력은 주류사회에서도 커다란 주목을 받았으며, UCLA에서는 타인종과의 조화를 연구대상으로 삼아 학생들이 직접 조사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송 관장은 향후 한인청소년 회관의 방향에 대해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우선 비영리기관을 전문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차세대 인력을 더욱 확충하는 것으로, 기존 틀을 뛰어 넘어 새로운 차원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또 현재 진행중인 프로그램들에 대해 전면적인 평가 작업을 벌여, 질적인 향상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대한 프로그램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며, 더욱 실질적인 혜택이 주민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그 배경이다.
수치로 본 KYCC (2007년 말 기준)
▲직원: 풀타임 75명
▲예산: 400만달러
▲기금 구성
정부 55%, 재단 30%, 기업체 15%
▲부서
-종합행정실
(3727 W. 6th St. #300)
-가정서비스센터
(680 S. Wilton Place)
-데이케어센터
(1140 Crenshaw Blvd.)
-환경서비스센터
(1319 W. Pico Blvd.)
▲운영중인 저소득층 아파트
-340 S. Reno(46유닛)
-1230(1236, 1240 포함) S. Menlo Ave.(추후 재개발을 통해 60가구 입주 예정)
▲운영중인 극빈층 아파트
-1020 S. Kingsley
-1400 S. Kenmore
-1401 S. Alington
-1745 20th St
-1810 Magno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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