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연합뉴스) 이기창 특파원 =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워싱턴 중견 언론인 모임인 ‘그리디론 클럽(Gridiron Club)’의 연례 만찬에서 노래로 이른 작별인사를 고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600여명의 참석자들 앞에서 영국의 가수 톰 존스가 불러 유명해진 팝송 `그린 그린 그래스 오브 홈(Green Green Grass of Home)’을 개사해 고향 텍사스로 돌아갈 날을 고대한다고 노래했다.
연미복에 나비 넥타이,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무대에 등장한 부시는 비행기에서 내리면 엄마와 아빠가 반겨주시겠지.. 당신 (기자)들도 나를 놀리던 나날을 그리워하게 될 거야... 고향의 누렇고 누런 잔디를 만지니 좋구나라고 능청스럽게 가사를 바꿔 불렀다.
부시는 또 백악관은 이제 저 멀리 있고, 나는 다시 자유라네, 평양의 위기도 걱정할 필요없지. 체니는 아직도 감춰뒀던 문서들을 끼고 다니네...라고 노래해 폭소를 자아냈다.
부시는 노래가 끝난 뒤 기립 박수를 보내는 참석자들에게 여러분은 부시와 부시 악단의 처음이자 마지막 공연을 감상했다며 단순한 진실을 말하겠다. 자유로운 언론 없이는 진정한 민주주의란 있을 수 없다고 온마음으로 믿는다.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한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물론 때로 성가시기도 하지만... 여러분도 기사만 안쓰면 전혀 나쁜 사람들이 아닌데...라고 농담도 잊지 않았다.
부시는 자신에 대한 가장 신랄한 비판자 중 한명인 원로 여기자 헬렌 토머스의 손을 잡고 ‘이별의 노래’를 합창한 뒤 그녀에게 키스하는 것으로 임기 중 마지막 ‘그리디론’ 만찬을 마무리했다.
123년 역사를 지닌 그리디론 만찬에는 이 클럽 정회원 65명이 초청하는 600여명의 미국 각계 유명 인사들이 참석해 골치아픈 미국 내 현안들을 춤과 노래, 연극 등으로 희화화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리디론 만찬은 풍자를 하면서도 상처를 주지는 않는다는 의미의 ‘그슬리되 절대 태우지 않는다’는 모토를 내세우고 있으며, 이 만찬에 초대받는 건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유력 인사들에게도 큰 영광으로 여겨지고 있다.
올해 만찬에는 체니 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등 부시 행정부 각료, 대법관, 상하원 주요 의원, 주지사 등이 초청받아 참석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민주당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참석하지 않고 대리인을 보냈으나 이날 모임의 최대 주제는 단연 대통령 선거였다.
‘오바마는 친구 주지사의 연설을 외우느라 바빠서 만찬에 빠졌다’ ‘새벽 3시에 백악관 비상전화가 울렸는데 아무도 받지 않았다. 다들 그리디론 만찬에 빠져서...’ ‘공화당이 대선에서 이겨야 하는데 ‘W’(부시의 별명)의 명성이 엉망이어서 힘들다’... 등의 농담이 쏟아졌다.
1885년 설립돼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언론인 모임으로 꼽히는 그리디론 클럽의 유일한 목적은 연례 만찬을 개최하는 것으로 국한돼 있다. 만찬 내용은 기사화하지 않는 것이 관례로 돼 있으나 풍성한 뒷얘기들은 뒤늦게 기사화되는 것은 물론 유명 정치인들의 자서전 등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lk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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