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하나가 나무위에서 떨어졌다. 그 도토리를 보면서 예전에 어머니가 해 주시던 도토리묵이 생각이 났다. 어머니를 모시고 동네 공원에 가면 어머니는 잠시도 쉬지 않고 나무에서 떨어지는 도토리를 주우신다. 어머니는 금방 한 소쿠리를 주우셔서 차에 싣는다. 의자에 않아서 잠시 쉬어 가시자고 하면 손자들 노는 사이에 한 소쿠리를 더 주우셔서 차에 실으신다. 미국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만 어머니는 아랑곳 하지 않고 주우신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께 미국사람들은 다람쥐의 양식이라고 생각하니까 다음에는 줍지 마시라고 말씀을 드리면 어머니는 이해를 하지 못하시고 의아해 하신다. 집에 오시기가 무섭게 주어오신 도토리를 망치로 깨뜨리신다. 언제 주어다 놓으셨는지 자그마한 돌 위에 도토리를 올려놓고 망치로 깨뜨려 물에 담그어 놓으신다. 그렇게 며칠을 깨뜨리시더니 이제는 믹서기에 넣고 갈아대신다. 그리고 농마를 얻기 위해 신문지에 펴 놓으시며 마르기를 기다리시는 어머니.
우리가 일을 다녀오니 저녁상에 언제 해 놓으셨는지 맛있는 도토리묵이 놓여 있는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젓가락으로 한입 먹어 보는데 어머니의 솜씨는 언제 먹어도 최고로 맛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나면 어머니는 고향에서 가난하게 사실 때 이야기를 하신다.
18세에 아버지를 만나시어 땅 한 평도 없는 시집에서 밤을 꼬박 새우시며 논에 물을 채워 농사를 지으시면서 많은 땅을 장만하신 어머니, 부지런한 사람만이 잘 살수 있다며 열심히 살아가란 어머니의 말씀이 지금도 귓전에 아른거린다.
첫딸을 낳으시고 살림 밑천이라고 위로를 받으셨지만 그래도 섭섭하시었다는데 둘째딸을 낳고 셋째 딸을 낳으니 집에서 눈치가 보였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공감을 느낀다. 육이오 전쟁을 겪으시면서 인민군과 중공군을 다 만나는 전쟁을 겪으시면서도 인민군 앞에서나 중공군 앞에서 언제나 당당하셨다는 당시 동네 분들의 증언을 들으면 어머니의 대범함에 존경심이 든다.
마흔하나에 낳은 아들이 장가를 갈 때 한없이 좋아하시며 며느리를 마치 딸을 대하듯이 아껴주시며 함께 살아 오셨다. 며느리가 집에서 바느질을 할 때도 밤에 잠을 주무시지도 않고 꼬박 새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한 가지라도 더 도와주려고 밤잠을 설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제발 주무시라고 속상해하면 나이를 먹어서 잠이 많이 줄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사랑을 느끼곤 했다.
손녀딸을 따라서 미국을 다녀오신 후에 사랑하는 손자들의 공부를 위해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자고 하시던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 우리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어머니는 74세의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계산하고 말씀 하셨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8년이란 세월이 지나서야 우리는 미국 땅에 첫발을 내딛었다. 생소한 미국 땅에 정을 붙이느라 어색해 하는 우리 부부에게 마음을 강하게 먹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하시면서 오히려 격려를 해 주시던 모습에서 용기를 얻곤 했다.
이제는 천국으로 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힘들게 세상을 살아 오시면서도 고생을 낙으로 생각하시고 자손들 걱정에 긴 한숨을 들이쉬던 어머니, 천국에서도 자손들을 내려다보시며 온갖 걱정을 하실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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