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우리 부부는 한인사 영문 출판기념회에 다녀왔다. 모인 손님들은 모두 우리 교민사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분들인 것 같았다. 이 책의 모태는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한인사 한국판의 편찬위원장이셨던 채영창 선생의 노고가 컸다고 이번에 책 편찬위원장을 맡은 강웅조 박사가 강조했다. 이들은 우리가 처음 이곳에 왔던 40년 전에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던 굉장한 일들을 해낸 듯싶다.
오래전 미국 사람들이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으면 ‘코리아’라고 대답하면 그곳이 어디냐고 들어본 적도 없다고 얘기했었다.
모두 공부한다고 와서 고생만 많이 하던 시절, 워싱턴에서 조금 떨어진 버지니아 남쪽에서 학교를 다니던 학생 하나는 한국말이 너무 하고 싶어서 화장실에 가서 혼자 애국가를 힘차게 부르고 났더니 기분이 좀 나아지더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이웃에서 누가 헌 차 하나만 사도 모두 한번 타보자며 드라이브를 가던 시절, 얼마 안 되는 한국 사람이지만 그들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고맙고 든든했는지 모르는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가끔 삶 가운데 가장 절실했던 시기의 외로움이나 고통이 잊혀지지 않고 어디쯤에 숨어 있다가 기쁘고 긴장이 풀어지는 날이 되면 문득 떠오르곤 하는 것 같다.
늦게 이민 온 분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열병처럼 지독하고 골 깊은 마음고생에 한번은 시달리고, 그 열병이 지나면 그때서야 마음도 편안해지는 것 같다.
이민 생활의 정착은 마치 학기말 시험에 합격하는 것 같다. 어느 정도 안정될 때부터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주위의 단순한 인연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며,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울타리를 만들어주어 그저 고맙고, 매사가 나 혼자만 훌륭해서 잘 살아 온 것이 아님을 새삼 느끼게 된다.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있었는데 세월은 강물보다 더 빨리 나의 곁을 지나고 있었다. 그 사이 우리 한국은 많이 성장을 하여 이제는 세계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바로 이것이 어디에서든 우리 국민이 열심히 살아온 노력의 흔적임을 나는 안다. 한일 월드컵 때 4강에 들어갔다고 빨간 셔츠를 입고 국민 모두 응원하던 때의 기억, 빨간 셔츠만 봐도 가슴이 뛰었다. 그때 떨리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희망에 찬 아침 이슬 같이 반짝이는 꿈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았다. 이것이 바로 애국심이 아니고 무엇이랴.
한국 사람이 워싱턴에 뿌리를 내린지도 벌써 120년이 되었다고 한다. 미국생활에 바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만은 그 시간들을 할애해서 자손 후대에 길이 전해질 귀중한 책을 만드시느라 수고한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정세권 미주 한인재단 워싱턴 회장님, 그리고 하루에 서너 시간씩 2년간 번역하다 목이 돌아가서 의사 치료까지 받으면서 끝을 냈다는 이규원 선생 또 성명 색인(索引)의 영문 검색을 자원봉사 했다는 황현준·배진아씨 부부, 그리고 책이 반듯하게 나오도록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와 박수를 보낸다.
세월이 지나도 이 지역 우리의 살아온 역사를 보여줄 영문 책 한 권 없음이 항상 안타까웠는데, 그저 ‘감사 합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태어난 우리 두 아이도 이 책만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모두 열심히 읽고 느낌을 얘기하겠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역시 영어라서 읽기도 편하다고 하네요... 그리고 그들도 자손 대대로 이 책을 물려주겠다고 합니다”.
이혜란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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