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때 들었던 과목 중에 보도법(Communications Law)이라는 클래스가 있었다. 법이란 말이 들어간 과목이니 분명 지루한 법 조항들이나 판례를 외어야 할 게 뻔했다. 보도법이 전공 필수 과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미루다 졸업을 한학기 남기고서야 수강 신청을 했다.
교수는 깐깐해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300명이 들어가는 강의실에서 마이크도 없이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수업을 시작했다. 아담한 체구 어느 구석에서 나올까 싶은 힘있는 목소리는 듣는 사람을 압도해서 맨 뒤에 앉아있는 학생들까지도 자세를 바로 하게 되었다.
강의 중간 중간에 손자 손녀 이야기가 나오는걸 보면 적어도 쉰은 넘었을 것 같은데, 늘 깔끔하게 빗어 넘긴 금발에 단정한 옷차림이었고, 강의에 충실하기 위해 수업 시작 전에 판서를 끝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과목의 성격 상 자주 다뤄야 했던 법 조항들을 설명할 때는 판사의 성대묘사를 하는가 하면, 가끔 피해자의 흉내도 내시던 그 교수님의 강의는 한편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할로윈 전날 있었던 강의에 마녀 분장으로 나타나서 세시간 내내 강의를 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원 때 들었던 마케팅 전략학 교수는 첫 시간에 “내 이름은…” 식의 인사도 없이 강의실에 들어오자마자 한 명을 찍어 첫 수업 전에 읽어 와야 했던 케이스에 대해 질문을 시작했다. 하버드에서 수학했다는 이 교수님은 질문을 던져 학생이 대답하면 또 다른 질문을 던져 바른 답이 나올 때까지 토론을 진행하는 이른바 ‘소크라테스 식’ 강의를 했는데 그 첫번째 희생자는 바로 나였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멋지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뒤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들과 내가 한 대답에 대해 “왜 그렇게 생각하나?”가 반복되면서 나는 완전히 패닉상태가 되고 말았다. 말로만 듣던 ‘소크라테스 식’ 강의를 경험하고 나는 그 수업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완전 무장 상태로 들어갔다.
세 시간 내내 농담 한번 없는 ‘살벌한’ 강의를 한학기 동안 들으며 어떻게 버텼는지…. 졸업 후 우연히 그 교수님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졸업도 했겠다, 나는 강의 시간에 왜 그렇게 안 웃느냐고 약간은 장난스러운 질문을 했다. 그러자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던 그 교수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난 내가 준비한 강의를 제대로 하는지 늘 긴장이 되서 강의 중에 농담을 할 여유가 없네”
처음으로 시작한 강의의 첫 번째 학기가 끝났다. 내가 일했던 분야의 강의이니만큼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했는데 강의 준비를 하면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확연히 보는 기회가 되고 말았다. 내가 언제 이걸 배웠었나 할 만큼 생경하게 느껴지는 것도 많고,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 되는 건지 고민스러워 손톱을 물어뜯다, 머리카락을 쥐어뜯다 하다가 한 학기가 끝난 것 같다. 새내기 교수인 나는 알량한 체면 때문에 보도법 교수님처럼 재미있는 모노드라마도 연출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전략학 교수님처럼 농담할 새도 없이 강의에 심혈을 기울이지도 못하는 것 같다.
제대로 가르쳤는지 자신도 없으면서 마지막 날 학생들이 교수평가서를 작성하는 모습은 어찌나 신경이 쓰이든지….
먼 훗날 내가 가르친 학생들 중에 누군가 단 한명이라도 지금 내가 두 교수님을 기억하는 것처럼 나를 기억해 줄 수 있을지… “너희들 뒤통수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던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 수준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
지니 조 / 라이프대 마케팅 교수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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