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의 손녀 애쉬리가 대학을 졸업하는 날. 신록을 가르며 국도 28번을 따라 남쪽으로 달리고 있다. 봄비에 젖은 아스팔트는 검은 윤기를 띠고 도로변에 늘어진 수목들의 푸르름이 한결 생기롭다. 아들 내외의 차에 편승해 가면서 문득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나의 졸업식을 회상 해본다. 6.25 동란의 와중에서 서울에 환도 후 첫 번째 가졌든 우리들의 졸업식, 폭격으로 불타 남은 냉기찬 강당에서 몇 십 명 모여 들어 식권 하나씩 배당받듯 손에 쥐었던 졸업장, 그것은 분명 전쟁의 상흔으로 얼룩진 상징물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영광의 졸업장이요, 추억 어린 졸업식이 아닐 수 없다.
두 시간을 달려가니 샬롯츠빌이 나타났다. 시간의 여유가 있어 졸업식 안내서를 훑어보았다. UVA는 이번으로 191회 졸업식을 갖는다 한다. 미국 독립선언서 서명자의 한사람이요, 제 3대 대통령을 지낸 토마스 제퍼슨이 이곳 샬롯츠빌에 둥근 돔으로 된 2층 건물을 짓고 로턴더(Rotunda)라 이름 지어 이 대학의 초석을 세운 것이 1819년의 일이였다. 동양적인 원의 개념을 좋아했든 제퍼슨은 손수 설계한 이 로턴더를 중심으로 그 전면에는 로마 정원의 양식을 갖춘 장방형의 산책로를 마들고 좌우 양쪽으로는 학생과 교수 혼용의 기숙사를 연립시킨 다음 이오니언 돌기둥으로 펜타론식 연쇄 통로를 만들어 놓았다. 흡사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링컨 메모리얼을 내려다보는 지형의 축소판이니 이는 수도 워싱턴의 설계자요 건축가였든 불란서사람 라파옛의 마스터 플랜에 의한 것이리라. 소설가 에드가 앨런 포도 1826년 이 기숙사 한 칸에 기거 하면서 1년간의 유학생활을 한 바 있다.
잔디밭 왼쪽 한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스낵을 위해 그로서리엘 들렀다. 안에는 검은 가운의 졸업생들로 붐비고 있었고 샴페인을 터뜨리며 환희의 함성을 울리고 있다. 젊음 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본다.
10시 정각이 되니 팡파르의 나팔은 울리고 박사, 석사, 그리고 학사 졸업생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12개 단과대학들이 각각 다른 색깔의 배너를 들고 선두에는 각 대학 학장이 직접 진두 지휘를 하고 있다. 드디어 문리대의 차례다. 인솔학장은 ‘메리딧 정은 우’ 라는 여인이었다. 단구의 몸으로 정지, 그리고 전진의 신호를 거듭하면서 대부대를 이끌고 입장하는 그녀의 모습은 당당하다. 믿음직스럽고 자랑스럽다. 국가에 대한 선서, 애국가, 그리고 대학 총장의 환영사로 이어지는 축하의 말들이 이어지는 동안 초청객들은 계속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아직도 먹구름은 머리 위를 맴돌며 “봄비에 젖는 졸업축제”를 가늠질하고 있다. 우천불구로 감행하는 이 야외졸업식은 UVA 만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고집스런 전통이라 한다. The Good Old Song(Old Virginia) 곡을 마지막으로 2시간에 걸친 졸업축제는 끝이 났다.
3대가 같이하는 이 뜻 깊은 졸업식 행사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고 있다. 구름 속에 가렸든 태양이 얼굴을 내밀고 정든 교정을 떠나는 6,256명의 졸업생들에게 빠이 빠이 인사를 하고 있었다.
변만식
기윤실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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