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사람들’(All the King’s Men)은 권력이 인간을 어떻게 타락시키는가에 관한 고전이다. 로버트 펜 워런이 쓴 이 소설은 퓰리처상을 받았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아카데미 작품상과 남우 및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상주의자로 출발한 윌리 스탁은 예상을 뒤엎고 선거에서 이겨 주지사가 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잘못된 체제를 개혁하겠다고 결심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적을 협박하고 추종자들에게 특혜를 주는 전형적인 정치인으로 바뀌다 결국 의사당 앞에서 총에 맞아 죽는다.
20세기 팬터지 문학의 금자탑으로 꼽히는 톨킨 작 ‘반지의 제왕’도 결국은 권력 맛을 본 인간이 타락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여러 사람이 신비한 힘을 가진 반지를 좋은 일에 쓰려 하지만 결국은 반지의 마력에 휘말려 악한으로 변모한다. 순진무구하기 그지없는 주인공 프로도 배긴스도 나중에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기 손으로 반지를 파괴하지 못하며 그 덫에 걸려 목숨을 잃고 만다.
지금 워싱턴과 새크라멘토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면 이들의 경고가 괜한 소리가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정치를 처음 시작하는 인물 치고 국가와 민족을 이야기 하지 않는 사람이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결국 정치인의 최대 관심사는 자기 정치 생명의 연장이 되고 만다. 재선이 돼야 뜻을 펼 수 있다는 말로 자기를 기만하지만 거미줄에 걸린 파리처럼 발버둥 치면 칠수록 권력의 노예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뻔뻔함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선거구 지도다. 미 전국 어느 곳 어떤 선거구를 막론하고 현대 추상화를 뺨치도록 꼬불꼬불하고 기기묘묘한 것이 특징이다. 왜 일까. 자신을 찍어줄 것 같은 사람들이 모인 동네끼리 연결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유권자가 정치인을 뽑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이 유권자를 뽑는 셈이다.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이런 엉터리 선거구 때문에 선거는 많은 경우 요식행위다. 수십 년 째 사실상 가주를 통치하고 있는 민주당은 2000년 집권을 영구화하기 위한 선거구 조작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지난 10년간 가주에서 692개의 지역구 선거가 열렸지만 그 결과 당선자의 당이 바뀐 경우는 5번에 불과하다. 0.7%의 교체율이다. 구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도 이보다는 자주 멤버를 바꿨다.
보다 못한 가주민들은 2년 전 가주 선거구를 14인 시민 위원회가 결정하도록 하는 발의안을 통과시켰다. 11월 선거에 이를 연방을 포함 모든 지역구로 확대하는 프로포지션 20이 올라오자 낸시 펠로시 연방하원 의장을 주축으로 하는 민주당은 아예 이 위원회를 없애버리자는 프로포지션 27을 발의시켰다. 올해 같이 반 현직 정서가 강한 때도 가주의 경우 경쟁이 제대로 벌어지고 있는 곳은 100개의 주 상하원 선거 가운데 불과 13곳, 53개의 연방 하원 선거 중 4곳에 불과하다.
한 때 ‘황금의 땅’이라고 불리며 미국은 물론 세계인들의 선망이 대상이었던 가주가 지금은 조롱과 동정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실업률은 미국 평균보다 훨씬 높고 초중고 학생들의 학력은 바닥을 기며 도로는 엉망이고 개스 관은 언제 터질지 모르며 엄청나게 불어나는 재정 적자 때문에 주 의회는 예산을 제 때 통과시키는 법이 없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그 중 가장 큰 것은 한 당이 너무 오래 집권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타락하기 쉬운 정치인들에게 자기 선거구를 정할 권한을 주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같다. 이번 선거는 고양이에게서 생선을 떼어내는 잔치가 돼야 할 것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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