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주와 피고용인과의 관계는 불평등 관계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직장에서 쫓겨나면 생계가 위협받지만 고용주는 직원 하나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산업 혁명 초기 노동자들은 어디서나 열악한 조건 하에서 착취당하기 일쑤였다. 19세기 사회주의 운동이 불같이 일어난 것은 이런 불평등과 불의가 횡행하는 세상은 뒤집어엎어야 한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노동자들이 투표권을 얻으면서 선진국은 어디나 노동조합 결성이 합법화되고 노동자들의 지위도 향상됐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우선 노조를 등에 업고 이들을 대표한답시고 놀고먹는 노동 귀족이 생겨났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회사의 수익이나 생산성과는 무관하게 더 많은 임금을 요구하고 불황에도 감원에 반대하는 것이 습관처럼 돼 버린 것이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생긴 조직이 무능력과 비효율을 비호하는 세력으로 변모한 것이다.
한 때는 “GM에 좋은 것이 미국에 좋은 것이다”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의 기업인 GM을 잡아먹은 것도 결국은 자동차 노조다. 끝없는 노조의 임금 인상과 은퇴 후까지 보장해야 하는 의료비 부담에 견디지 못하고 문 닫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정부의 구제 금융으로 간신히 살아났다.
기업의 경우 노조의 횡포에는 한계가 있다. 비합리적인 요구를 거듭해 회사가 문 닫게 되면 일자리를 잃기 때문이다. 기업주 입장에서는 그렇게 되기 훨씬 전 노조가 약하고 인건비가 싼 외국으로 공장을 이전해 살 길을 찾기 마련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 사기업 노조는 점점 더 힘을 잃고 있다.
그러나 망하지도 않고 외국으로 이전할 수도 없는 조직의 노조도 있다. 공무원 노조다. 정부가 폐업하는 일도 외국으로 가는 일도 없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문 닫을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공무원 수가 늘면서 노조의 발언권도 세진다. 미국 내 사기업 노조가 계속 위축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공무원 노조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 공무원 노조의 입김이 가장 거센 주 가운데 하나가 가주다. 가주에선 20대에 공무원으로 출발해 50대에 은퇴하면 죽을 때까지 10만 달러가 넘는 연봉을 받으며 안락한 생활을 즐기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능력을 평가해 중간에 자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대표적 공무원 노조의 하나인 교사 노조의 경우 학생들을 잘못 가르쳤다고 쫓겨나는 일은 거의 없다. 오로지 밥그릇 수가 유일한 판단 기준이다. 지금 같은 극심한 재정난 속에서도 잘리는 교사는 막 대학을 나와 의욕에 부푼 젊은 선생들뿐 고참들은 까딱없다. 이런 철 밥통 규칙을 조금 완화시켜 보려하자 교사 노조는 즉각 소송을 검토하겠다 으름장을 놨다.
왜 가주 초중고 교육이 엉망이고 온갖 도로는 울퉁불퉁한가를 물을 필요가 없다. 공무원 노조가 가주의 이익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이 노조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정당이 민주당이다. 2일 열릴 선거에서 미국을 휩쓰는 반 민주당 돌풍에도 불구하고 가주의 경우는 민주당 제리 브라운 주지사 후보와 바바라 박서 연방 상원의원이 무난히 당선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37살의 나이에 가주 지사에 당선된 브라운은 한 때는 참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게 벌써 35년 전 이야기다. 능력이 있길래 다시 주지사 후보가 됐겠지만 민주당에 사람이 없기는 참 없는 모양이다. 박서 또한 유능한 정치인임에는 틀림없다. 이름답게 싸움을 잘 해(박서는 불독의 변종으로 자기보다 큰 상대도 거침없이 물어뜯는 개의 종류이기도 하다) 28년 전 연방 하원에 선출된 후 한 번도 선거에서 져 본 적이 없다.
문제는 빛바랜 이들이 도탄에 빠진 가주를 살린 비전과 의지가 있느냐다. 대답은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선출된다면 가주의 앞날에 대한 희망은 접는 것이 현명하다. 공무원 노조의 횡포를 바로잡지 않고 가주가 나아질 길은 없기 때문이다. 가주는 당분간, 어쩌면 오랫동안, 좋아지기보다는 나빠질 것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