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86세의 노인이지만 한때는 지미 카터도 참신한 정치 신인이었다. 1976년 1월 카터가 대통령 출마를 발표했을 당시 그의 지명도는 3%에 불과했다. 카터 어머니도 아들이 ‘프레지던트’에 출마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느 모임 회장이냐”고 반문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나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기존 정치인에 염증을 느낀 미국인들에게는 때 묻지 않은 신선함이 오히려 자산이었다.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서 이기더니 당내의 기라성 같은 거물들을 제치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따냈다. 그리고는 그해 11월 50%대 48%라는 아슬아슬한 차이기는 하지만 현직인 포드를 누르고 백악관 입성에 성공했다.
그러나 희망 속에 출발한 그의 국정 운영은 순탄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두 자리 숫자의 인플레와 높은 실업률이 발목을 잡았고 워싱턴의 고참들이 ‘조지아 땅콩 장수 출신 촌놈’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막으려던 그의 노력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했고 냉전을 완화시켜 보려는 소련과의 데탕트 정책도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그 결과 1978년 중간 선거에서 민주당은 참패했지만 카터의 정책은 바뀌지 않았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대소 정책의 실패가 명백해졌고 그 보복으로 1980년 미 역사상 처음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하기로 한 결정은 국내 여론만 악화시켰다. 1979년에는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고심 끝에 ‘미국이 병들었다’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 에너지 절약을 위해 카풀을 이용하고 가급적 차를 많이 타지 말라는 호소를 했다가 대통령답지 못하다는 핀잔만 들었다. 1980년 대선에서 그는 선거인단의 90%를 잃는 참패 끝에 백악관을 떠났다.
1992년 대통령 출마를 발표한 클린턴도 무명이었다. 당시 선거는 걸프전 승리로 90%의 인기를 누리던 아버지 부시의 당선이 너무 확실시 돼 마리오 쿠오모를 비롯한 민주당 거물은 아예 나오지 조차 않고 ‘일곱 난쟁이’로 불리는 군소 후보만 난립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개혁’을 부르짖는 젊은 신인 정치인에 기회를 줬고 클린턴은 예상을 깨고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그는 취임하자마자 일반인의 관심사가 아닌 군대 내에서의 동성애자 차별 금지에 몰두했고 아내 힐러리는 국민적 지지가 없는 의료 개혁을 강행하려 했다. 그 결과는 1994년 중간 선거에서의 유례가 드문 참패였다. 공화당은 수십년 만에 연방 상하원을 장악하고 클린턴은 레임덕으로 임기를 마치는 듯싶었다.
그러나 그는 1996년 민주당 리버럴의 반발을 무릅쓰고 웰페어 수혜자격을 5년으로 제한하고 취업을 장려하는 보수파의 숙원 법안에 서명하며 중도로 입장을 선회했다. 그 결과 그는 1996년 선거에서 승리하고 그의 탄핵을 주도했던 깅그리치 하원의장은 오히려 얼마 후 정계를 떠났으며 클린턴은 지금까지 가장 유능한 정치인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변화’를 외치며 돌풍을 일으켜 무명 정치인에서 하루아침에 백악관의 주인이 된 인물이 있다. 지난 주 중간 선거에서 7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참패한 민주당의 오바마 대통령이다. 그는 대공황 이래 최악의 금융 위기로 절망에 빠진 미국을 살리겠다며 그 자리에 앉았으나 지난 2년간의 성적표는 기대 이하였다. 실업률은 두 자리 숫자에 근접한 채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일반인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나아질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거기다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가 없는 의료 개혁을 공화당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 숫자의 힘으로 밀어붙여 통과시켰다. 수천억 달러를 쏟아 부은 경기 부양안은 일자리를 늘리는 데는 별 효과를 보지 못한 채 재정 적자만 늘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선거 후 오바마는 공화당 측에 상대방 입장도 존중할 것은 존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과연 그가 위기에 몰렸다 살아난 클린턴처럼 재빠른 변신에 성공할 것인지, 아니면 카터처럼 우물쭈물 하다 2년 뒤 권좌에서 밀려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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