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사에 따르면 이번 연말연시 미국인들이 가장 받고 싶어하는 선물은 전자책(e북) 리더(reader)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책이란 종이와 잉크가 아닌 컴퓨터 다운로드로 보는 책으로 이를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기기가 e북 리더인 것이다.
시장에는 여러 종류의 e북 리더가 나와 있지만 양대 산맥은 단연 아마존의 킨들과 애플의 아이패드다. 아이팟과 아이폰에 이은 애플의 3대 명물인 아이패드는 사실상 미니 컴퓨터로 책을 읽는 것은 물론이고 이메일부터 게임까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선명한 컬러가 나오는 것도 장점이다.
그러나 게임과 인터넷이 아닌 책 읽는데 필요한 도구로는 킨들이 한 수 앞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우선 킨들은 첨단 테크놀로지로 컴퓨터 스크린이 아닌 책을 보는 것과 거의 같은 느낌을 주며 눈이 편안하다. 글자 크기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고 3G가 장착된 것을 사면 언제 어디서나 순식간에 거의 모든 책을 다운받을 수 있다.
문고판 크기의 자그마한 킨들 하나에 3,500권까지 책을 저장할 수 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아이패드처럼 월 수수료도 없고 성경을 비롯, 판권이 소멸된 고전을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수천 페이지짜리 고전으로 하드커버 가격이 수백달러에 달하는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가 단 1분 만에 거저 킨들에 담기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경이 그 자체다. 한 가지 단점은 아직 컬러가 없고 그래픽이 약하다는 점이지만 이는 머지않아 해결될 것이다.
아마존을 비롯한 미국 서점들은 전자책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종이책 판매가 매년 줄어드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전자책은 꾸준히 더 팔리고 있다. 지금은 전자책 매출이 전체 도서의 8%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3년 내 3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들이 열을 내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전자책의 마진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자책 값은 종이책보다 훨씬 싸지만 원가가 거의 들지 않는다. 팔리는 대로 거의 남는다고 보면 된다. 미국 양대 대형 서점 체인인 보더스와 반스&노블 가운데 그나마 반스가 선전하고 있는 것은 ‘누크’라는 e리더를 개발해 전자책 판매에 어느 정도 성공했기 때문이다.
반면 전자책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는 보더스는 이대로 가면 내년 중에 문을 닫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반스와의 합병을 제의하고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반스와 보더스 하나는 머지 않아 사라진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미국 시장 판도는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데 IT강국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과연 IT강국답게 이미 18년 전 e북을 개발해냈다. 그러나 지금 e북으로 책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e북을 개발한 사람이 저자에게 인세를 주지 않고 책 판 돈을 모두 챙겼다 잡혀 지금 감옥에 가 있기 때문이다.
출판 관계자들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한국에서는 e북이 자리를 내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워낙 불법 다운로드가 성행하고 있기 때문에 돈을 주고 책을 다운로드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저자와 출판사는 전자책 내기를 거부하고 따라서 e리더 또한 무용지물이다. 이 분야에 일찍 진출했던 삼성도 손을 털고 나왔다. 불법 다운로드는 범죄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기 전까지 한국에서는 종이책을 봐야할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종이책에 익숙한 구세대는 이를 죽을 때까지 놓지 않겠지만 e북과 함께 자라나는 신세대에게는 이런 애착이 없다. 신세대 숫자가 늘어나고 구세대가 줄어드는 것과 비례해 e북의 비중은 커질 것이다. 이집트인들이 파피루스를 발명한 이래 5,000동안 문명을 지탱해 온 종이책은 e북에 자리를 물려주고 서서히 사라지는가 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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