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널리 기억되지 않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사람에 생시몽이란 인물이 있다. 젊은 시절부터 야심이 만만하던 그는 매일 아침 하인에게 “일어나세요, 해야 할 큰 일이 있습니다”라고 자신을 깨우게 했다. 10대 소년 시절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독립 전쟁에 참전, 이 전쟁을 승리로 끝낸 요크타운 전투 때 워싱턴 밑에서 싸웠다.
그는 또 일찍부터 아메리카 대륙 한가운데 운하를 뚫어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계획을 세웠다. 황당무계하다는 주위의 조롱에도 불구, 그의 비전은 수제자 앙팡탱에 의해 추진됐으며 앙팡탱의 열정은 레셉스를 감복시켜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 개통을 가능케 한다. 레셉스는 이어 파나마 운하도 실현시키려 노력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죽지만 나중에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의해 현실이 된다. 집념 어린 꿈은 결국 이루어지는가 보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역사적 공헌은 사회주의 제창이다. 마르크스의 주장으로 널리 알려진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나누는 사회’를 처음 외친 사람이 바로 그다. 그는 살아생전 별 호응을 받지 못하고 무일푼으로 죽었지만 그의 사상은 여러 사람, 특히 마르크스에 의해 계승 발전돼 한 때 공산주의 사회가 지구 1/3을 덮는 결실을 맺는다.
많은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로 사라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이는 착각이다. ‘모든 사람이 부족함 없이 사는 사회’는 아직도 매력 있는 이상으로 남아 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이상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지식인들과 먹고 살 걱정이 없는 부자를 제외한 국민들은 이를 지지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 한국을 비롯, 대다수 국가가 지향하고 있는 복지 국가 이념은 내용을 보면 생시몽과 마르크스의 ‘필요에 따른 분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제2차 대전 이후 영국을 필두로 서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가난과 질병, 기아에서 해방된 삶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을 폈다. 그러나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이들 나라는 지상낙원이 되기보다는 장기 불황과 고실업, 인플레 등 쇠락의 길을 걸었다. 영국에서는 대처, 독일에서는 메르켈, 프랑스에서는 사르코지가 나와 한결같이 복지 축소 정책을 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능력’과 ‘필요’가 상수가 아니라 변수이기 때문이다. 당장 일을 하지 않으면 굶는 사회에서는 누구나 열심히 일을 하려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가만히 있어도 국가가 죽을 때까지 챙겨주는 나라에서는 굳이 땀 흘려 일할 필요가 없다. 복지 혜택이 풍성하면 할수록 근로 의욕은 줄어들고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한 세금은 무거워지며 국가 부채는 늘어난다. 그럼에도 표가 필요한 정치인들은 복지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고 이에 맛들인 유권자들은 혜택 축소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서유럽과 미국, 일본을 막론하고 국가 빚이 끝없이 늘어가는 이유다.
요즘 한국에서는 민주당이 무상 급식에 무상 보육, 무상 의료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한다. 민주당의 공약이 실현되면 어떻게 될까.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가주를 보면 된다. 70년대부터 가주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무상 의료 등 사회 복지 혜택을 대폭 확충하고 공무원 등에 대한 연금도 후하게 주기 시작했다. 가주 같이 풍요로운 곳에서는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 결과 가주는 이제 연 수 백억 달러에 달하는 만성적인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갈수록 높아가는 세금 때문에 떠날 수 있는 부자와 기업은 떠나고 가난한 이민자만 몰려들고 있다. 그 덕에 가주의 인구 증가율은 10년래 최저로 떨어지고 생활의 질은 악화하고 있다.
새로 주지사에 취임한 브라운은 복지 혜택 축소와 증세를 통한 균형 예산, 그리고 가주 회생을 약속하고 있으나 얼마나 이것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인간은 정녕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서야 정신을 차리는 존재인가.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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