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제일 닮은 사람을 역대 대통령 가운데 하나 들라면 누구를 꼽아야할까. 아마 빌 클린턴이 아닐까 싶다. 별 볼 일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사실상 아버지 없이 편모슬하에서 큰 점, 자기 힘으로 명문대에 들어가 일찍 정치에 눈을 뜬 점, 역시 명문대 출신 변호사를 부인으로 둔 점, 타고난 말솜씨와 대중 속을 파고드는 호소력으로 무명 정치인에서 혜성처럼 떠올라 백악관을 차지한 점까지 너무나 똑같다.
취임 후 리버럴의 숙원 사업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다 여론의 역풍을 맞아 중간 선거에서 참패하고 한 때 재선은 고사하고 남은 임기 내 대통령으로서 제 구실을 할 수 있을까 의심받았던 것까지 같다.
클린턴은 94년 중간 선거에서 연방 상하원을 공화당에 내주고 코너에 몰린 절대 절명의 상황에서 정부 폐쇄라는 공화당의 악수를 유발시켜 여론을 반전시킨 후 96년에는 웰페어 개혁안이라는 보수파의 숙원 사업에 서명하고 중도파를 끌어안음으로써 재선 압승은 물론 르윈스키 스캔들에도 불구, 퇴임 후 지금까지 민주당 내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남아 있다.
2010년 중간 선거에서 참패한 후 오바마의 행적으로 보면 클린턴 플레이북을 그대로 따라 하기로 결심한 듯 보인다. 그는 부시 시절 시작된 고소득층 감세 폐지를 포기하고 오히려 한시적이기는 하지만 상속세 면세 한도를 1인당 500만 달러까지 높임으로써 미 국민 99%가 상속세를 내지 않게 하는 안에 서명했다.
민주당 일각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 상속세 사실상 철폐와 관련해 공화당과 보수파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불과 몇 개월 전 공화당의 일치된 반대에도 불구, 민주당을 몰아붙여 의료 개혁안을 통과시켰을 때와는 천양지판이다.
애리조나 총격 사건이 발생, 민주당 하원의원을 포함 여러 명이 죽고 다치는 사건이 발생하고 사라 페일린을 비롯한 공화당 극우파가 이런 정치 폭력이 난무하는 분위기를 조장했다는 여론이 일었음에도 그는 누구도 이를 상대방을 비난하는 핑계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민주당만이 아닌 초당적 정치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굳혔다.
그 이후 여론 조사는 나날이 그의 인기도가 올라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찰스 크라우트해머를 비롯한 보수파 정치 평론가들도 그의 이런 모습에 찬사를 보내며 그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공화당에 경고하고 있다.
중간 선거 직후 나왔던 ‘오바마는 이제 끝났다’는 말은 어디론가 들어가고 이제는 ‘지금 선거 하면 재선은 틀림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한 분석에 따르면 2008년뿐 아니라 2000, 2004년 대선을 결정한 소위 ‘배틀그라운드 스테이트’로 오바마가 이긴 오하이오와 플로리다를 다음 선거에서 잃더라도 오바마의 재선은 무난할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 오바마가 2008년 선거에서 이긴 주 서너 개를 내줘도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는 분석이다.
거기다 경기는 나아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실 클린턴이 중간 선거에서 참패했던 94년 경기는 최악이었다. 미국 전체가 90~91년 불황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미국인들은 고실업에 지쳐 있었다. 그러던 것이 95년 하이텍 붐과 함께 호경기로 돌아섰고 이것이 96년 클린턴 재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만약 그 때처럼 2010년이 바닥이고 앞으로 대선 때까지 계속 경기가 좋아진다면 오바마의 재선은 낙관해도 좋다. 정책도 중요하고 정치적 기술도 중요하지만 대선 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경기다. 배가 부르고 여유가 생기면 유권자들은 집권당에 표를 준다. 배가 고프고 하루하루가 고달프면 유권자들을 집권당에 표를 주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 공통되는 진리다.
지금 미국인들은 경기 회복과 일자리 창출에 목말라 있다. 이를 만족시키는 것보다 큰 과제는 없다. 올해로 집권 후반기를 맞는 오바마가 성공적인 대통령으로 기록되느냐 안 되느냐는 앞으로 1년 10개월간의 경기가 좌우한다 해도 큰 잘못은 없으리라.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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