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중에서 목이 가장 긴 기린의 목뼈는 몇 개일까? 정답은 일곱 개다. 그렇다면 목이 거의 없다시피 한 돼지의 목뼈는 몇 개일까? 역시 일곱 개다. 생쥐는? 호랑이는? 사자는? 코끼리는? 고양이는? 개는? 토끼는? 모두 일곱 개가 정답이다. 4,000종이 넘는 포유류 99.99%의 목뼈는 모두 일곱 개다. 오직 나무늘보만이 일곱 개가 넘지만 그것도 밑에 부분은 등뼈가 변화한 것이라 한다. 역시 포유류인 인간의 목뼈도 일곱 개다.
사실 목뼈가 꼭 일곱 개여야 할 이유는 없다. 여섯 개든 여덟 개든 그 이상이라도 목으로서 기능을 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그런데도 어째서 모든 포유류는 목뼈가 일곱 개인 것일까? 하나님이 천지를 7일 동안 창조해서?
정답은 모든 포유류가 목뼈가 일곱 개였던 공통 조상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모든 포유류는 형제자매고 같은 모델의 변종이다. 따라서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쉽고 정확한 방법은 동물을 연구하는 것이다. 동물은 인간에 비해 단순하고 거짓말을 잘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물원에 자주 가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동물의 가장 큰 특징은 게으르다는 점이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것처럼 날쌔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는 일은 거의 없다. 대체로 누워서 자거나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자연 상태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자는 하루 열 몇 시간씩 잠만 잔다. 움직일 때라고는 먹잇감을 사냥할 때, 경쟁자의 도전을 받았을 때다. 먹을 것을 위해서라면 죽을힘을 다 해 달리고 일단 잡으면 게걸스럽게 먹는다. 도전자가 나타나면 역시 목숨을 걸고 싸우다 안 되겠다 싶으면 줄행랑을 놓는다. 게으르고 탐욕스러우며 겁 많은 것이 동물의 본성인 것이다.
동물을 나무랄 필요는 없다. 하루하루가 생존 경쟁의 연속인 자연 상태에서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할 수는 없다. 생존에 필요한 일 이외에 에너지를 쓰거나 먹을 것이 눈앞에 있는데 점잔을 빼거나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만용을 부리던 개체는 이미 도태돼 지상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침팬지와 유전자의 97%를 공유하고 있는 인간의 행태도 동물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짜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인간의 심리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고자 하는 진화의 산물이다.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과실이 입에 굴러들어온다면 이보다 좋은 일은 없다. 몇몇 사람이 이런 방식으로 배를 불렸고 누구나 이렇게 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쪽으로 사람이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어째서 수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버블이 부풀었다 터지기를 되풀이하는 이유이다. 17세기 초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부터 18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남양 및 미시시피 버블, 20세기 초 미국의 주식 버블, 20세기말 일본의 주식 및 부동산 버블, 그리고 최근 우리가 경험한 미국의 하이텍과 주택 버블 모두 붕괴 오래 전부터 그 위험에 대한 경고가 잇달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지난 주 나온 금융 위기에 관한 정부 보고서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고 있다고 한다. 이 보고서는 버블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수수방관한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 등 금융 감독 기관과 정부 당국, 위험한 파생 상품을 만들어 위기를 키운 월가의 은행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이들은 비난 받아야 마땅하지만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수백만 명의 시민/투자가/투기꾼들이 주택 가격은 오르기만 할 것이란 맹목적인 믿음으로 서류를 엉터리로 꾸며 살 능력이 안 되는 집을 무리하게 샀기 때문이다.
하이텍 버블이 터져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는 것을 보고도 불과 수년 후 주택 버블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뛰어들었다는 것은 눈앞에 거저 생기는 이익을 보면 이성을 잃는 것이 대다수 인간의 모습임을 보여준다. 게으르고 탐욕스런 인간의 본성이 거품을 키우고 몰락에 대한 공포가 이를 터뜨린다. 인간의 본성이 바뀌지 않는 한 버블의 형성과 붕괴는 반복되리라 봐도 무난하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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