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 든다/ 첨벙’(후루 이케야/ 가와즈 도비코무/ 미즈노 오토).
일본 전통 시가인 하이쿠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마쓰오 바쇼의 ‘오래된 연못’이란 시다. 5,7,5자로 이뤄진 하이쿠의 대가 바쇼는 17세기 일본을 상징하는 시인일 뿐 아니라 아직까지도 일본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그의 시는 에즈라 파운드를 비롯한 서양 주지파 시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대표작 ‘안으로의 좁은 길’(오쿠노 호소미치)이 나온 1694년은 일본 문학사상 기념비적인 해로 평가받고 있다.
이 작품은 수백 년의 전란에 시달려온 일본을 통일하고 평화를 가져다 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신궁이 있는 닛코를 거쳐 미야기 현의 마쓰시마까지를 여행하며 본 바와 느낀 바를 적은 것이다. 마쓰시마는 히로시마의 이쓰쿠시마, 교토의 아마노 하시다데와 함께 일본 3경의 하나다. 바쇼는 이 책 앞머리에 “마쓰시마에 뜬 달을 보고 싶어” 길을 떠나게 됐다고 적고 있다. 그런 그도 막상 마쓰시마를 보고서는 “마쓰시마 아, 아 마쓰시마 아, 마쓰시마, 아” 이상의 글을 남기지 못했다.
마쓰시마는 바쇼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인 묵객이 탄식과 함께 작품을 남긴 곳이지만 당분간은 구경하기 힘들게 됐다. 일본 역사상 최악의 강진이 지난 주 바로 마쓰시마 앞바다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일본 당국은 처음 리히터 진도 8.8로 발표했다 나중에 9로 수정했는데 이는 칠레와 알래스카, 인도네시아에 이어 사상 네 번째로 큰 규모다.
사망자 수는 처음 수백명으로 시작했다 현재 수천명까지 늘어났는데 만명 이상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인구 1만7,000명 마을의 절반 이상이 행방불명인 상태인데 그 중 대부분은 사망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외신이 감탄해 마지않는 것은 이런 어마어마한 재해가 발생했는데도 흔들리지 않는 일본인들의 자세다. 천재지변이 일어날 때마다 함께 나타나는 범죄와 약탈, 사재기와 패닉은 좀처럼 찾아 볼 수 없고 모두 질서정연하게 구호품을 받으러 줄 서 있는 모습이 놀라울 뿐이다.
“이런 규모의 자연 재해를 이겨낼 수 있는 나라는 일본뿐”이라는 기사가 났는데 이를 부인하기 어렵다. 어려서부터 교육이 잘 돼서 그런지 워낙 지진에 익숙해져 그런지는 몰라도 모든 나라가 배워야 할 모습이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일본을 마주 보고 있는 남가주 주민들은 더욱 그렇다. 지구상에 발생하는 지진의 90%는 소위 ‘불의 고리’라 불리는 환태평양 지진대에서 일어난다. 얼마 전 칠레와 뉴질랜드에 이어 이번에 일본에서 초강력 지진이 터졌다. 지질학자들은 남가주에서 대형 지진이 발생하는 것은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시간문제라 보고 있다. 그 발생 시기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강도는 커진다. 그 사이 힘이 비축되기 때문이다.
지진 발생의 근본 원인은 마그마 위에 떠 있는 판 조각들이 마그마가 끓어오르는 것과 발맞춰 이리저리 움직이기 때문인데 현재로서는 언제 어디로 움직일 것인지를 미리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날이 더우면 지진이 난다’는 것과 같은 속설은 ‘개가 많이 짖으면 지진이 난다’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구 내부가 차디차게 식어 용암의 움직임이 정지하지 않는 한 지진은 계속된다는 점이다. 용암이 식으면 지구를 태양풍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는 자장의 보호막도 사라지고 지구상의 생명체는 종말을 맞게 된다.
지진은 인류가 지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하는 대가의 하나다.
이번 일본 동북부 지진은 인간이 지진의 위력 앞에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를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보여줬다. ‘만물의 영장’이라며 스스로 뽐내는 인간은 알고 보면 대자연이라는 깊고, 넓고, 오래된 연못 안에서 폴짝폴짝 뛰어노는 한 마리 개구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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