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꾸지도 말고 빌려 주지도 말라.” 셰익스피어의 ‘햄릿’ 앞부분에 나오는 명언이다. 덴마크의 재상 폴로니우스는 아들을 유학 보내면서 사는 데 필요한 여러 지혜를 가르쳐 주는데 그 중 첫 번째가 이것이다
부부 간의 다툼도 따지고 보면 돈 문제가 가장 잦은 원인이고 개인 대 개인, 회사 대 회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소송의 나라’ 미국 소송이나 최근 변호사가 많이 늘어 못 살게 됐다고 아우성치는 한국이나 분쟁의 대부분은 민사고 민사는 돈 문제다. 개인 간의 관계도 잘 안 풀리면 개인이나 기업이 파산하고 문을 닫지만 국가 재정은 잘못 돌아갈 경우 나라가 통으로 망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16세기 유럽의 강국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었다. 이들은 신대륙에서 약탈한 무궁무진한 금은보화, 동아시아 향료 군도에서 가져온 향료 무역으로 유럽 역사상 상상할 수 없는 부를 축적했다. 그러나 그 많던 금은보화도 끊임없는 전쟁과 사치로 탕진하고 결국은 나라가 거덜이 나고 말았다.
그 뒤를 이어 유럽을 제패한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태양왕’이란 칭호답게 유럽 최고의 궁전 베르사유를 짓고 호사의 극치를 누렸다. 사람들은 프랑스 혁명을 당해 단두대에서 목이 달아난 루이 16세와 그 부인 마리 앙트와네트를 어리석다고 말하지만 프랑스는 이미 그 이전에 결딴나 있었고 루이 16세는 조상이 뿌린 씨를 거둔 것에 불과하다. 유럽에서 가장 비옥한 땅, 주 경쟁자 영국에 비해 면적은 3배나 넓고 인구는 2배나 많은 프랑스도 한번 기운 재정을 살리지 못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돈을 어떻게 벌었느냐와 얼마나 벌었느냐는 국가 존망과 별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키포인트는 수입보다 많은 지출이 장기간 지속되는데 있다. ‘역사상 가장 현명한 왕’으로 불리는 솔로몬도 알고 보면 폭군이었다. 본인이 ‘솔로몬의 영화’를 누리고 있는 동안 유대와 이스라엘 민족은 중과세와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
그가 죽은 후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를 이어받자 민족 대표들은 세금과 노역 감경을 요구하고 그리 하면 충성을 바치겠다고 했다. ‘아랫것들이 새 왕을 우습게 본다’고 생각한 그는 과세와 노역을 늘렸고 이스라엘 10개 지파는 분리 독립을 선언하며 떨어져 나갔다. 유대와 이스라엘로 갈라진 두 나라는 싸움으로 날을 지샜고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 차례로 망해 그 후 매커비 부자가 잠깐 독립 국가를 세운 것을 제외하고는 3,000년에 가까운 세월을 방황하게 된다.
지금 이들 여러 나라들이 걸어온 길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나라가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이다. 이미 미국의 국가 부채는 14조 달러로 GDP의 60%가 넘는다. 앞으로 10년 간 매년 1조달러가 넘는 재정 적자가 발생하며 머지않아 100%를 돌파할 전망이다.
앞으로 발생하는 재정적자의 90%는 소셜 시큐리티와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그리고 국채에 대한 이자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만성적 재정난은 불가피하다. 중남미와 남유럽 국가들이 겪고 있는 국가 부도 사태가 미국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오바마는 지난 국정 연설에서 사회 보장 제도 개혁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 하지 않았다. 오바마도 이런 사정을 모르지는 않겠지만 내년 대선 승리에 필요한 노인 표가 무서운 것이다.
공화당 지도부는 다음 달 사회 보장 지출분에 대한 과감한 삭감과 함께 제도를 뜯어 고치는 개혁안을 내놓을 예정이라 한다. 아마도 이 안을 지지하는 정치인들은 정계를 은퇴해야 할 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자기 이익보다 국가 이익을 앞세우는 사람들의 희생을 거쳐 발전해왔다. 테르모필레에서 수십만 페르샤 군과 맞서 산화한 스파르타 인들이나 게티스버그에서 노예 해방과 미국의 통합을 위해 목숨을 던진 이들을 오늘까지 기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미국 정치인들이 이번만은 자신의 정치 생명보다 국가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기 바란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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