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가 있다.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 맨 앞부분인 이 시구는 시인의 본 의도와는 달리 큰 사고가 날 때 자주 인용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4월에 큰 사건이 많이 일어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국과 미국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한국에서는 반만년 한민족 역사상 민중이 처음으로 독재 정권을 타도한 4.19가 있고 미국에서 독립 전쟁의 시발로 꼽히는 렉싱턴에서 식민지 민병대와 영국군 간의 교전이 일어난 것도 4월 19일이다.
미 독립 전쟁에 못지않게 미국 역사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친 남북전쟁도 4월에 일어났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연방 탈퇴를 선언하고 찰스턴 항을 굽어보고 있는 포트 섬터의 연방군을 철수시킬 것을 요구했다. 링컨이 이를 거부하자 1861년 4월 12일 이에 발포했고 포트 섬터는 함락됐다. 이것이 남북전쟁의 시작이다.
미국이 독립한 후 노예제는 두고두고 말썽의 씨앗이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독립 선언서 정신에 비춰 보면 말도 안 되는 제도지만 목화 재배를 경제의 근간으로 하고 있는 남부 주 입장에서 보면 이는 필수불가결한 제도였다.
처음 노예제에 대해 약간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던 남부 주민들의 태도는 면화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면서 달라졌다. 노예제는 성경에서 보는 것처럼 신이 정한 세상의 질서이며 무지한 흑인들에게 먹고 살 것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임금 노동제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미국이 유럽처럼 영토가 정해진 닫힌 사회였으면 이 문제는 적당히 봉합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매년 서부로의 팽창이 계속되고 새 주가 속속 연방에 들어오면서 이를 노예주로 할 것인지, 자유주로 할 것인지는 타협이 어려워졌다. 양쪽 모두 자기편을 드는 주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상대방 제도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820년과 1850년의 타협에도 불구, 1860년 선거에서 노예제 팽창 반대론자인 링컨이 첫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되자 한 남부 11개 주들이 연방 탈퇴를 선언했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자 남부는 남부대로 북부는 북부대로 이를 열렬히 환영했으며 양쪽 모두 몇 달 안에 전쟁은 끝날 것으로 내다봤다.
인구로 보나 면적으로 보나 남부의 2배에 달하는 북부는 당연히 승리를 낙관했고 무사도 정신이 발달한 남부는 남부대로 북군쯤은 간단히 때려잡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실제로 남북전쟁을 통틀어 가장 유능한 장군으로 남부군의 로버트 리가 꼽힌다.
그러나 전쟁은 버지니아와 테네시, 조지아에 걸친 광대한 지역에서 장장 4년간 엎치락뒤치락을 거듭하며 계속됐고 이 와중에 62만 명의 젊은이가 희생됐다. 미국이 탄생한 이래 지금까지 다른 모든 전쟁으로 죽은 사람 수보다 많다. 미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을 며칠 앞둔 1863년 7월 1~3일 남부군의 리는 전쟁을 한 판 승부로 결정짓기로 마음먹고 펜실베니아 게티스버그에서 북부군과 사상 최대 규모의 전투를 벌인다. 이날 3일간 전투로 발생한 사상자만 5만 명이 넘는다.
링컨은 ‘게티스버그 연설’을 통해 “미국은 자유 안에서 잉태되었으며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명제를 실현하기 위해 탄생했다”며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선언했다. 워싱턴과 함께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링컨은 1965년 4월 9일 남부군이 항복한 지 불과 1주일 후인 4월 15일 암살범의 총에 맞아 사망하고 만다. 이 날은 한반도의 남북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이 태어난 날이자 타이타닉이 가라앉은 날이기도 하다.
만약 남북 전쟁에서 남부가 승리했다면 노예제는 오랜 기간 지속되고 북 아메리카 대륙은 여러 갈래로 찢겨 유럽 각국의 각축장이 됐을지 모른다. 지금처럼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는 일도 물론 없었을 것이다. 큰 사건들이 몰려 있는 4월을 맞아 역사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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