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인간, 부도덕한 사회’(Moral Man, Immoral Society)는 미국을 대표하는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대표작 중 하나다. 인간 개개인은 도덕적일 수 있지만 인간이 모인 집단은 도덕적일 수 없다는 것이 책의 논지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동물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생물은 생존하기 위해 먹어야 한다. 그러나 먹이를 원하는 경쟁자들은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먹이를 먹지 않고 배고픈 남에게 주는 생명체는 오래 전에 도태돼 없어졌다. 수십 억 년에 걸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아 생태계의 정상에 선 인간은 이기주의의 결정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갈 때는 도덕적 행동을 한다. 어째서일까.
이기주의로 무장된 인간은 남의 얌체 짓을 발견하는 데는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 직장에서 혼자 얌체 짓을 하는 사람은 결국에 가서는 왕따 당하기 마련이다. 조직에서 왕따 당한 개체는 생존하기 힘들다. 아무리 얌체 짓을 하고 싶어도 남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도덕률의 기원이다.
그러나 집단이나 아예 사회 전체가 한 덩어리가 돼 얌체 짓을 할 때 이를 견제할 장치는 없다. 오히려 애국심, 혹은 생존권으로 포장돼 그렇게 하는 것이 도덕적인 것처럼 보인다. 일본 국민들은 개인 차원에서는 친절하고 정직하며 근면하지만 그런 사람들로 이뤄진 집단이 남경 대학살과 생체실험을 저지르고 대동아 전쟁을 일으켰다.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은 일본 국민만이 아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보통 손자 손녀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이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집단을 이루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고사리 같은 손주 손에 용돈을 쥐어주기는커녕 배고픈 아이가 먹고 있는 빵을 빼앗아 먹고도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모르게 된다.
머지않아 미국을 재정 위기에 빠뜨리게 할 것이 확실시 되는 사회 복지 비용 이야기다. 노인들의 의료와 생계를 보장해 주는 메디케어와 소셜 시큐리티는 정부가 제공하는 것 중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 수혜자들은 혜택 감축이나 개혁 이야기만 나오면 “내가 낸 돈 내가 찾아가는데 축소가 웬 말이냐”고 펄펄 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인기 있는 이유는 자기가 낸 돈보다 훨씬 많은 혜택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금 노인들이 전에 세금으로 낸 돈은 이미 그 전 노인들이 다 써 버렸고 현재 받고 있는 혜택은 지금 일하고 있는 근로자들이 매달 세금으로 낸 돈으로 메우고 있다.
노인들의 평균 수명은 나날이 길어지고 의료비는 나날이 올라가며 국가 부채는 나날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혜택을 고수하자고 고집부리는 것은 배고픈 손자 손녀의 빵을 빼앗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오는 8월까지 현 14조 달러로 돼 있는 미 국채 상한선을 높이는 안을 놓고 길고 지루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 공화당은 사회 복지 비용의 축소를 요구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미국과 후손의 장래를 위해 이들의 축소는 방법이 문제일 뿐 불가피하다.
니버는 인간의 이기심을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로 봤다. 각자가 자기가 취하고 있는 행동이 이기심의 발로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사회 개혁은 고사하고 사회의 존속도 어렵다. 오바마는 니버를 “내가 좋아하는 사상가”로 꼽고 그에게 진 빚을 인정한 적이 있다. 표도 좋고 재선도 좋지만 무엇이 미국을 살리는 길인가를 오바마는 깊이 성찰하기 바란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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