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영화 ‘포리스트 검프’를 보면 검프가 새우잡이 회사를 차려 번 돈을 ‘애플’에 투자해 거부가 되는 장면이 나온다. 검프는 애플이 자기가 즐겨 먹던 사과를 재배하는 회사인 줄 알고 주식을 샀는데 애플 주가가 마구 오르면서 떼돈을 벌게 된 것이다.
약간 두뇌 회전이 ‘느리기’는 하지만 천성이 착한 검프가 하늘의 축복을 받아서인지 뭐든지 하는 일이 잘 되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의 하나지만 애플의 성공과 검프가 전혀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검프 정도의 지능을 가진 사람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 애플 제품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태블릿 PC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애플의 아이패드에는 제품 설명서가 없다. 꼭 설명서를 원하는 사람은 애플 사이트로 가 다운로드 받으면 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스위치를 틀면 웬만한 사람은 본능적으로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알게 만들어져 있다. 3살짜리부터 대학교수까지 금방 능숙하게 다룬다.
편리함도 편리함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애플의 절제된 단순미에 빠져든다. 누르는 단추라고 켜고 끄는 스위치와 소리를 크고 작게 하는 버튼이 전부다. 제품 전체가 간결함의 정수이자 젠 매스터의 가르침이 담긴 한 편의 예술품을 보는 것 같다.
이런 서양의 하이텍에 동양의 미학을 가미한 애플 제품에 전 세계가 흥분하고 있다. 음반 전체가 아니라 곡 하나하나를 사는 새로운 개념의 마케팅을 전제로 한 아이팟에서부터 애플의 미학과 테크놀로지로 스마트폰의 역사를 다시 쓴 아이폰, 그리고 PC 시대의 종말을 예고한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애플 제품에 대한 고객의 사랑은 중독을 넘어 종교적 열정에 가깝다.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몇 시간 씩 줄을 서 사고 자나 깨나 옆에 두고 침식을 같이 하는 사람이 하나둘이 아니다. 한 때 망해가던 애플의 시가 총액이 미국 최대 기업인 엑손 모빌을 넘어서고 애플의 현금 보유고가 미국 연방 정부를 제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런 애플의 성공 신화 뒤에는 스티브 잡스가 있다. 미혼모에게 버려져 입양된 잡스는 오리건에 있는 이름 없는 대학을 한 학기 다니다 중퇴한 것이 학력의 전부다. 미국 최고 부자 빌 게이츠나 ‘페이스북’을 만들어 20대 억만장자가 된 마크 주커버그 모두 하버드 중퇴자인 것을 보면 미국에서 억만장자가 되려면 일단 대학 중퇴부터 해야 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이 때 잡스가 청강한 서예 과목은 훗날 애플 디자인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한 때 인도로 건너간 그는 불교 신자가 돼 돌아왔고 결혼식 주례도 젠 선사가 맡았다. 잡스의 친부는 시리아계 회교도라고 하는데 그러고 보면 애플 제품이 전 세계인에 어필하고 있는 것도 한 문화와 한 지역에 치우치지 않는 그의 독특한 경력이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그 스티브 잡스가 지난 주 애플 최고 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오래 전부터 췌장암을 앓고 있었는데 아마 그 악화가 원인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는 이로써 사실상 IT 업계에서 은퇴했으나 이미 그가 남긴 업적만으로도 그는 록펠러나 카네기, 포드 등 미국 비즈니스 전설의 반열에 오르기에 충분하다.
빌 게이츠는 “내가 석기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오래 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잘 뛰지도 못하고 나무도 잘 못 타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잡스가 이런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기 전에 미리 알아내는 그의 천부적 재능이 1차적 원인이겠으나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 미국적 시스템이 있기에 가능했다. 석기시대는 그만두고 그가 구소련이나 모택동 치하의 중국에서 자랐더라면 애플도 IT 혁명도 없었을 것이다. 그의 남은 인생이 평안하기를 빈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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