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은행은 여성들에게 인기 직이다. 그나마 근무 시간이 일정하고 일이 고되지 않으면서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단 행원 자리도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한 사람 뽑는 광고가 나가면 수 백 명의 지원자가 몰린다. 명문대 졸업은 기본이고 외국어 하나 정도는 유창히 해야 하며 해외 연수에 자격증 서너 개쯤은 기본이다. 선배 직원들조차 갓 들어온 후배들의 이력과 능력에 주눅이 들 정도다.
한국은 또 스마트 폰이 세계에서 가장 널리 보급된 나라다. 한국에서 스마트 폰이 일반에 퍼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2년 남짓. 그 사이에 2,000만 명의 국민이 이를 쓰고 있다. 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셀 폰 수는 4,700만대로 추산되는데 인구 5,000만의 나라에 셀 폰 수가 4,700만대라는 것도 놀랍지만 앞으로 수년 내 스마트 폰이 그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한다.
최근 4분기 삼성전자의 수익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이 스마트 폰 판매다. 유력한 경쟁자였던 LG는 스마트 폰 개발에 한 발 늦은 죄로 엄청난 적자를 기록하며 그룹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애인 없이는 살아도 스마트 폰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에 빠져 있다. 온갖 정보도 여기서 얻고 게임과 영화, 음악 등 오락도 이것으로 하고 소셜 네트웍을 통해 교제도 이것으로 한다. 이들에게 스마트 폰은 삶 그 자체나 다름없다.
청년 실업률 20%에 달하는 극심한 구직난과 세계 최고의 스마트 폰 보급률을 결합시켜 보면 지난 주 열린 서울 시장 선거 결과를 이해할 수 있다. 이번 시장 선거에서는 집권당과 제1 야당 후보가 모두 지고 무소속의 시민운동가가 승리하는 한국 역사상 초유의 이변이 벌어졌다.
이번 선거에서 20대~40대는 그에게 60%가 넘는 표를 몰아줬고 특히 30대는 75%라는 경이적인 몰표를 줬다. 이들의 압도적 지지가 없었더라면 일개 시민이 양대 정당 후보를 꺾는 기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한국의 젊은이들은 어려서부터 고생을 많이 한 세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온갖 과외에 시달리다가 고등학교 때는 살인적인 입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러고도 다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며 설사 명문대를 나와 봐야 좋은 직장 취업이 보장된다는 법은 없다. 대학 가서도 스펙 쌓기에 각종 자격증 따기, 해외 연수 경력 쌓기 등 취업 경쟁을 벌여야 한다.
요행히 직장에 들어가도 긴 근무 시간과 엄청난 육아비 및 교육비 부담에 고통 받아야 하고 그러다 40대가 되면 명퇴라는 이름의 해고 불안에 시달려야 한다. 스스로를 ‘조기’(조기 퇴직 당한 사람) ‘명태’(명예퇴직 당한 사람) ‘황태’(황당하게 퇴직 당한 사람) ‘동태’(겨울에 퇴직 당한 사람)로 부르며 자학하는 이들에게 기존 정치권은 증오와 조롱의 대상 이상 아무 것도 아니다.
불안과 분노, 불만으로 뒤덮인 이들이 소셜 네트웍으로 무장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이번 선거는 분명히 보여줬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의 불만이 앞으로 한 해 사이 해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고 그럴 경우 제도권은 다시 이들 공격의 표적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제일 피를 볼 사람은 지금까지 대세론에 안주해 있던 박근혜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조짐으로 볼 때 이미 박근혜는 차기 대통령보다는 차기 대통령이 될 것으로 안심하고 있다 낙마한 이회창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젊은이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안철수가 ‘박원순 루트’를 따라 걷는다면 청와대에 입성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 세를 불리고자 만든 정당에 몸담고 있는 것이 오히려 표를 깎아먹는 특이한 나라 한국은 두고두고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될 것 같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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