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방송의 일종인 팟캐스트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인터넷 방송 초창기에는 반드시 컴퓨터 앞에 앉아 들어야 한다는 불편 때문에 대중적이지 못했으나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팟캐스트의 청취자도 늘어나고 있다. ‘나는 꼼수다’라는 팟캐스트가 다운로드 1위라는 자리에 올랐고 이 놀라운 현상 때문에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주류 언론에 비중 있게 보도되더니 그 출연진들이 며칠 뒤에 미국까지 방문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어느새 기성세대의 소리를 듣게 된 나로서는 가벼운 농담 같은 이야기로 진행되는 그 방송에 그렇게 몰입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대화 속에 담긴 비판의 해학과 거침없이 웃어 제치면서도 특정 사안을 분석해 나가는 치밀함에 ‘나는 꼼수다’가 갖는 인기가 단순한 유행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프로는 주로 정치적 사안을 다루지만 대형교회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그만큼 목사들은 정치가들과 더불어 희화화의 주요한 소재가 되었다. 교회는 정도를 걷는 기관이 되어야 하지만 이제는 부패한 정치와 동일선상에 있다.
교회가 정도를 걷지 못할 때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돌들이 소리치게 될 것이다(누가 19:40). 예수 시대의 지도자들은 말이 없지 않았지만 들을 말이 없었기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날의 교회도 여전히 말이 많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말 속에는 점점 들을 말이 사라져 가고 있다.
이념을 초월해야 할 목회자들이 이념의 수호자가 되어 아무데나 이념의 색깔을 덧입히는 것을 보면 그들의 말은 어린이들의 담벼락 낙서만도 못하다. 차라리 시냇물이 흐르면서 돌에 부딪혀 나는 소리가 더 아름다울 때가 많다.
교회는 먼 아프리카 땅에 있는 아이들과 결연을 하고 가난한 지역에 선교사를 보내 돕는다. 아름다운 실천이지만 그 실천의 주체자들의 말에는 왜 이런 지구적 불균형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분석과 비판이 없다. 오히려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자본주의의 수호자가 된 것이 바로 교회다. 바로 지금 내 곁에 누군가가 굶고 있는 것은 외면하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면 이념논쟁으로 끌고 간다.
“내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더니 나를 성자라고 하더니 그들이 왜 먹을 것이 없는지 물었더니 나를 공산주의라고 했다”라는 브라질의 까마라 신부의 말이 다시 귓가에 맴돈다.
교회는 고상한 언어로 말하지만 몇몇 사람이 골방에서 떠드는 이야기보다도 신뢰를 주지 못하는 슬픈 현실이다. 이제는 교회가 정도를 걷는 ‘정수’가 되어야 한다. 더 이상 교회가 꼼수의 비아냥거림을 들어서는 안 된다. 교회의 이야기는 졸리지만 사회의 각성제가 되어야 하고, 뻔한 이야기 속에 다짐이 있어야 한다.
설교 잘하는 목사들의 만담 같은 웃김이 아니라 내면의 미소를 이끌어내는 말을 교회가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꼼수다’ 같은 아직은 낯선 시도가 교회가 가야 할 길을 바로 잡아주는 반면교사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아 나에게 무거운 책임을 지운다.
김 기 대 목사 <평화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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