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밴쿠버에 살고 있는 칼루 라슨은 ‘애드버스터’라는 반 소비-반기업 잡지의 편집장이다.
그는 일반 시민들이 대기업에 대해 갖고 있는 분노가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보고 지난 7월 트위터에 ‘월가를 점령하라’ (occupywallstreet)는 태그를 올렸다.
미국 내 수십 개 도시와 전 세계를 휩쓸었던 ‘점령’ 운동은 이렇게 시작됐다. ‘우리는 99%다’‘빈부격차 반대’를 슬로건으로 내건 이 운동은 한 때 많은 미국인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백악관까지 “오바마는 99%의 친구”라
며 이들을 편들었다.
이들은 지난 9월 월가의 주코티를 공원을 점령하며 기세를 올렸지만 시민들의 이들에 대한 지지는 오래가지 않았다. 실업자, 노숙자에 인근 불량배까지 가세
하면서 이곳은 우범지대로 변해 갔고 성폭행, 강도 등 불미스런 일이 끊이지 않았다. 같은 ‘점령군’ 안에서도 남의 물건을 자기 것처럼 가져다 쓰는 무임승차 행위가 빈번했고 중구난방으로 의견이 각양각색이어서 단합된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보다 못한 시당국은 결국 강제 해산 작업에 들어갔고 뉴욕과 오클랜드 점령군이 경찰에 의해 쫓겨났다. 한 때 이들을 환영했던 LA 시장실과 의회도 시공원에서의 노숙을 금지하는 법규를 내세워 이들의 철수를 요청했고 조용히 물러가 달라며 달래고 있으나 이들은 말을 듣지 않고 있다.
관계자들은 이들의 점령으로 경찰관 오버타임 등 각 도시가 추가 지출한 경비가 1,300만 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5,800만 달러에 달하는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오클랜드가 시위 대응 비용으로 쓴 돈만 240만 달러, LA시 잔디 피해 복구비용은 20만달러에 이르고 있다. 이 비용은 결국 시민들이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지역의 우범화와 경비보다 더 이 운동의 동력을 잃게 하고 있는 것은 무한정 잔디밭을 ‘점령’하고 있어본들 달라질 것은 별로 없다는 참가자 본인들
의 회의 때문이다. 이들이 계속 공원에 앉아 ‘우리는 99%’를 외쳐본들 구체적 행동강령을 마련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려는 노력이 없이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현 체제가 특권층에 유리하고 공정하지 못하다는 이들의 주장은 상당 부분 옳다. 은행과 증권사들은 ‘망하기에는 너무 크다’는 이유로 정부 구제 금융을 받아 살아난 뒤 중역들에게 수백만 달러씩 보너스를 주는가 하면 대기업들은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쓰며 로비스트를 고용해 세제상 온갖 특혜를 누리고 있다.
농산품 값이 급등하며 기록적인 수입을 올리고 있음에도 대규모 영농 기업들은 정부 보조금을 꼬박꼬박 챙겨간다.
주택과 자동차 업계도 마찬가지다. 금융 위기가 터지자 이들은 경기 부양을 위해 필요하다며 연방 정부로 하여금 주택과 자동차 구입시 세금 감면이란 형
식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이 프로그램 시행 직후 자동차와 주택 판매가 잠시 늘기는 했으나 반짝 효과에 그쳤고 시행이 끝나자 판매는 다시 급감했
다. 어차피 살 사람들이 조금 앞당겨 산 것뿐이고 이로 인해 가뜩이나 늘어가던 재정 적자 폭은 더 커지기만 했다.
‘점령’ 운동가들이 정말 세상을 바꿀 생각이 있다면 이제는 잔디밭에서 나와 정부에 특혜를 요구하는 기업과 이들에게 특혜를 주는 정치인을 규탄하는 정
치 조직으로 변신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제도를 바꾸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고 그것은 결국 투표로 이뤄진다.
일부에서는 ‘1%가 미국 소득의 20%를 차지하고 있다’며 소득균등화를 주장하지만 대다수 미국인들은 능력에 따른 소득 차이는 인정하고 있다. 한 여론 조사
에 의하면 미국민의 88%는 능력에 의한 소득 격차는 공평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만들어 떼돈을 번 스티브 잡스를 비난하는 미국인은 없다.
정부의 공권력에 의한 인위적인 소득 재분배는 경제 성장을 둔화시킬 뿐이다.‘ 점령’ 운동 지지자들이 미국 체제를 보다 공정한 토대 위에 다시 세우는데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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