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그저 묵묵히 열중하면서 의연하게 서 있음으로 하여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이들에게 감동을 주거나 나아가서는 다른 이들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일이 있음을 가끔씩 본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이런 분들을 몇 분쯤 만나게 된다면 인생살이가 훨씬 윤택해지리라 믿는다. 다행스럽게 나에게도 이런 분들이 몇 분 계신 데 최근에 또 한 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리타 할머니는 2년 사이에 남편, 딸, 아들을 차례로 먼저 보낸 올해 91세의 할머니시다. 그 잃어버린 아들이 바로 우리 남편의 친구였으며 56세의 나이로 작년 7월에 생일을 며칠 앞두고 떠나갔다.
어찌 슬프지 않은 죽음이 있으랴만 열세 살의 늦둥이 아들과 온갖 어려움 이겨내며 이제 갓 의사가 된 아내와 보람찬 날들을 가꾸어 갈 시점에서 떠나 간 그의 빈자리는 너무나 처절하였다.
지난 5월에 메릴랜드 베데스다에 살고 계시는 리타 할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방문하는 길의 남편과 나는 정말 우울하기 그지없었다.
인간의 언어가 어찌 아들 잃은 어머니의 가슴을 어루만질 수 있으며, 그 비통의 울부짖음을 다독거릴 수 있겠는가?
뜻밖에도 슬픔이 파 놓은 우물에 갇혀 계시지나 않나 하는 우려와는 달리 할머니께서는 아들에 대한 아름다웠던 기억을 더듬으시며 아들이 선물로 남기고 간 아이패드를 동무 삼아 하루하루의 삶을 다지고 계셨다. 은퇴 전에 영어 선생님이셨던 할머니께서는 독서클럽을 세 군데나 참여하시고 시사나 정치에도 관심이 많으셨다.
주저앉아 땅을 치시는 것보다 땅 위에 올라서서 자연의 순리를 바라보는 희망의 줄을 잡으신 것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니 부모님께서도 돌아가시고 또한 가까이에 있던 정든 이들이 홀연히 떠나는 일들이 있을 터인데 그 일들을 어찌 감당할까 하는 두려움이 불현듯 온몸을 휘어잡아 놓을 때가 있었다.
그러한 암담함을 할머니께서는 어찌 물리치시는 지 궁금했었는데 리타 할머니 집을 나오면서 위로해 드리러 갔던 우리가 도리어 마음의 평화를 얻고 인생의 지혜를 감지해 온 것이었다.
수십 년 전 내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게 중요함을 가르쳐주신 분이 계셨다. 중학교 1학년 때 치마, 저고리를 입으시고 지그시 눈을 감으신 채 시 한줄 한 줄을 읊어 주셨던 국어 선생님은 훗날 나로 하여금 나의 학생들에게 시 낭송과 시 암송의 기쁨을 소개하게 된 바탕이 되었다. 생각하건대 그 선생님은 대학을 갓 졸업하시고 첫 발령지에서 모든 열정을 다해 학생들을 가르친 것이었다.
학생들에게 존경을 강요하지도 않으셨고 인기에 연연해하지도 않으셨으며 본인의 일에만 사랑을 쏟는 모습 속에서 어린 우리는 젖은 안개 같은 감성을 듬뿍 받아들였지 않았나 싶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갓 국어 교사가 되었을 때 그 선생님을 찾아뵙고 나의 사랑을, 아니 내 속에 살고 있는 선생님의 사랑을 알려 드릴 기회가 있었다.
두 분을 생각할 때마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 남을 의식하지 않은 채 자신의 위치와 처지에 성실하게 임하고 흔들림이 없이 서 있으셨기에 은근한 향기가 스며 나왔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난 내 자리에 열정을 지니고 서 있는가?
엄마의 자리에, 아내의 자리에, 동료의 자리에 흔들림 없이 견고하게 서 있는가? 아무 의아심 없이 사는 것보다는 때론 고개 갸웃거리며 내 자리를 돌아보며 살아보려는 노력이라도 해야지 하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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