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연분홍 치마’에서 ‘노라로’라는 여성을 알게 되었다. 86세인 그녀는 패션디자이너이다.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으려 17세에 결혼하고, 부당한 시집살이로 인해 19세에 이혼, 1947년 패션디자이너의 길을 홀로 간다. 1956년 파리에서 돌아와 한국 최초 ‘패션쇼’를 개최하고, 1961년 ‘기성복’을 창조, 양장 대중화의 선구자가 되었다. 당시 유명 디자이너인 ‘발렌시아’도 3,000명 옷을 한명씩 가봉할 정도인 ‘맞춤’시대에서 노라노가 ‘기성복’을 만들었다는 것은 혁명이었다. "La Vie en Rose 전"에서 60년간 그녀의 작품들에 매료되었고, 그녀의 옷만 입으며 반평생을 함께 살아온 여성들을 보며 무언가 숙연함과 경건한 존경심이 나를 낮아지게 했다.
"예술가는 선구자이다." 창조라는 것은 처음이기도 하지만 당대의 사상, 그리고 낯설음에 도전해야 한다. 누군가 앞서가지 않는다면 사회는, 정신은,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노라노는 1947년 유교사회에서 이혼할 정도로 자신의 인생에 대한 그림을 확실히하고 실천한 여성이다. 그녀는 미니스커트를 한국에 처음 선보이며 현모양처가 아닌 모습이라 지탄받았다. 이는 너무도 엄청난 사회에 대한 도전이었다. 50, 60년대 양장은 여성의 사고를 진보적이고 사회로 나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녀는 그렇게 옷을 통해 구시대 여성의 움직임을, 생각을 바꾸고, 자존심을 갖도록 활동해왔다.
노라노의 삶은 다른 이를 진보적인 여성으로 변화시키는 귀감이 되었다. 난 그녀의 인생관에 전적으로 함께한다. 창조하고, 용기내어 결단하고,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삶이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고 삶일 것이다. 난 그녀가 지켜온 삶, 작품이 아름답다 느꼈다. 이 시대는 남성들도 앞선 여성들과 함께 보조하고 이해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그런 여성을 질시하고 비난하는 것이 어쩜 또다른 여성들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유교 정신에서 좋은 것은 취하고 불합리한 것은 바꾸어야 하는 것도 여성들의 몫이다. ‘하고 싶었는데...’에서 벗어나 결단하고 시작하는 것도 여성 자신의 몫이다. 언제까지 아이들, 남편, 이 나이에, 나중에... 그렇게 시간을 흘려 보내고 있을 것인지? 이제 자신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결단해야 할 때이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꿈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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