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갈수록 심화되는 은퇴 후 빈부차 - 빈 손으로 가는 게 인생이라지만…
▶ 노인이 되면 학벌·외모·성별까지 평준화되지만 평생 쌓아올린 노후자금 차이는 그대로 남아, 미국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결국 죽어야 끝나
보스턴 지역에서 시간강사로 활동하는 수잔 맥나마라가 매사추세츠 퀸시의 공공도서관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올해 62세인 맥나마라는 모아둔 노후자금이 없어 은퇴를 늦출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생의 어느 단계에 도달하면 개인차를 만들어 내는 변별요소가 하나 둘씩 사라진다. 학벌이 무력화되고, 외모가 평준화되며 결국에는 남녀구별도 희미해진다. 만인의 평등화, 평준화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그리고 이 같은 평등화의 수순은 은퇴연령을 넘기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개개인의 재정형편은 현역에서 물러난 후에도 결코 편평해지지 않는다. 편평해지기는커녕 기울기가 더욱 가팔라지는 게 요즈음의 추세다. 왕년에 아무리 잘 나가던 사람이라도 일단 은퇴하고 일에서 손을 떼면 수입이 끊긴다. 한마디로 은퇴 후에는 너나없이‘개털’이 된다.
월급이 끊겨 제로 수준에서 소득의 평준화가 이루어졌다 해서 개인의 전반적 재정형편까지 동일한 수준에서 균형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학력차가 사라지고 외모도 ‘그 얼굴이 그 얼굴’이 되어버리며, 때가 되면 남자 여자를 구별할 근거마저 사라져버리지만 평생 쌓아올린 노후자금 차이는 그대로 남는다.
빈부간의 노후자금 규모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커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찌들린 삶을 살아온 변방의 사람들은 노후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빈손으로 맞는 황혼은 두렵다. 윌리엄 키스트러는 철로에 몸이 묶인 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열차를 바라보는 것과 같은 속수무책의 절망감과 두려움으로 은퇴를 기다린다고 털어놓았다. 급속히 몸체를 키우며 달려드는 열차는 순식간에 코앞에 닥친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콜로라도주 골든에 거주하는 올해 63세의 키스트러에게는 노후자금이 별로 없다.
그는 거의 평생을 자영업자로 지냈다. 지난 10년간 비영리기관에서 일하며 401(k)로 약간의 돈을 모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워낙 박봉이다 보니 많은 액수를 적립할 수는 없었다.
은퇴를 앞둔 부유한 다른 미국인 은퇴자에 비하면 그는 차라리 ‘빈손’에 가깝다.
키스트러는 “노후자금이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겁에 질린다”며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장래 일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들지만, 따지고 보면 그게 더 문제”라고 털어놓았다.
그의 말대로 노후문제는 외면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평생 박봉에 의존해 생활해온 월급쟁이들이 노후에 대비해 목돈을 만들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힘들다.
우선 전통적 연금을 제공하는 민간기업들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저임금 근로자들은 직장퇴직연금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사실상 차단되어 있다.
이러다보니 이미 상당한 폭으로 늘어난 노후자금의 빈부차도 점점 더 벌어지게 된다.
베이세대에 속한 7천만명의 근로자들이 은퇴연령기로 접어들고 있지만 이들 가운데 넉넉한 노후 보장책을 지닌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근래 들어 노후자금과 소득의 상관관계는 이전 세대에 비해 더욱 긴밀해졌다. 게다가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의 경제력 차이는 은퇴 이후에도 더욱 확대되고 있다.
흔히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은퇴이후의 황혼녘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손에 쥔 것 없이 맞는 황혼은 두렵다.
이처럼 아무런 준비도 갖추지 못한 채 일선에서 내몰리는 근로자들의 수가 늘어나는 것과 비례해 정부에 가해지는 압박수위도 올라간다. 각종 노인복지 서비스를 확충해야 하고 빈민 은퇴자들에 대한 재정지원 부담도 커진다.
미국의 빈부격차는 지난 2009년에서 2012년에 이르는 짧은 기간 상당폭으로 확대됐다.
UC버클리 경제학자인 엠마뉴엘 사에즈가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 인플레이션을 반영한 최상위 1%의 소득은 무려 31%가 늘어난 반면 그 외의 소득계층에 속한 나머지 근로자들의 임금은 평균 0.4% 증가하는데 그쳤다.
근로자들의 소득차가 이렇게 커지면 자연스레 노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심화되기 마련이다. 노후자금이 주로 확정형 연금플랜인 401(k)와 저축, 홈에퀴티 등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현재 민간분야에서 401(k)와 같은 확정형연금에 가입한 근로자 비율은 13%로 1985년의 33%에 비해 크게 못 미친다.
하루살이 인생들은 직장연금과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처지에 저축을 하거나 내 집을 장만할 형편은 더 더욱 못 된다. 여기에 소득격차까지 벌어졌으니 은퇴 후 삶의 질적 차이가 어떨 지는 묻지 않아도 뻔하다.
진보주의 성향을 지닌 경제정책연구소 연구진의 자료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층에 속한 미국 가정의 인플레를 감안한 노후자금 규모는 1989년의 4만5천539달러에서 2010년에는 16만달러로 껑충 뛰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소득 하위 20%층에 포진한 미국 가정의 노후자금 중간값은 1989년의 8천433달러에서 8천달러로 오히려 떨어졌다. 노후자금이 전혀 없는 가정은 경제정책연구소의 조사대상에서 제외됐다.
‘임플로이먼트 베니핏 리서치 인스티튜트’(EBRI) 리서치 디렉터인 잭 반더헬은 연간 소득이 2만5천달러 미만인 가구의 90%가 지난 2009년 노후자금으로 1만 달러 미만을 저축하는데 그쳤다고 밝혔다. 2009년에 비해서는 다소 높아진 수치다.
이에 비해 연간소득이 여섯자리 숫자인 가정의 42%가 2012년 기준으로 최소 25만달러의 자금을 비축해 두었다. 2009년 25만 달러 이상을 노후자금으로 쌓아둔 여섯자리 소득계층의 비율은 34%였다. 요즘은 노후가 두렵지 않은 자가 복된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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