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카운티의 가장 유명한 인사 중의 한 사람으로 코스타메사의 ‘사우스코스트 플라자’를 개발한 헨리 시거스트롬이 91세로 자택에서 별세했다.
지난 1967년 리마콩을 재배하는 가족농장을 사우스코스트 플라자로 전환한 그는 80년대에는 이 플라자 건너편에 있는 오렌지카운티 퍼포밍 아츠센터 건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나중에는 확장공사에 5,100만달러를 기부했으며, 2013년에는 이 센터를 시거스트롬으로 개명했다.
그의 덕분에 OC 퍼포밍 아츠센터는 비엔나, 베를린 오케스트라, 브로드웨이 뮤지컬, 러시아 발레단을 초청할 수 있는 세계 정상급의 문화센터로 자리매김했다. 오렌지카운티 주민들은 세계적인 공연을 보기 위해서 LA로 갈 필요가 없게 됐다.
그의 조부모는 스웨덴 출신의 이민자로 지난 1898년 오렌지시에서 20에이커의 오렌지 농장을 리스하기 이전 시카고, 위스콘신, 미네소타를 거쳐서 오렌지카운티에 정착했다. 그의 가족들은 결국 코스타메사시에 2,000여에이커의 땅을 매입해 미국에서 가장 큰 독립적인 땅콩농장을 운영했다. 당시 그는 비즈니스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2003년 칼스테이트 풀러튼 ‘오럴 퍼블릭 히스토리 센터’에서의 연설에서 “우리 가족의 역사는 계속 매입만 했고 오렌지카운티에 이주한지 첫 50년 동안에는 어떤 것도 매각하지 않았다”고 밝혔었다.
그는 또 “나는 17세 때 스탠포드에 진학했고 25세가 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의 진주만 폭격으로 그는 학업을 중단하고 미군에 입대해 독일 라인강에서 전투를 벌이다가 거의 죽을 뻔 하다 살아났다. 당시 그는 손가락을 잃었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스탠포드로 돌아와 MBA 과정을 마치고 25세에 가족 비즈니스에 합류해 현재의 사우스코스트 플라자를 세웠다. 고인은 그동안 자선사업가로 계속해서 활동해 왔다.
한편 고 헨리 시거스트롬의 추모행사는 오는 28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샌타애나에 있는 페어페이븐 메모리얼 공원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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