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수 (전 뉴잉글랜드 한인회장)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UN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 개국, 당시 필리핀 국민소득 170달러, 태국 220달러, 한국은 76달러였다. 우리 밑에는 달랑 인도라는 나라뿐이었다.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이 100달러를 위해 단군할아버지로 부터 무려 4,30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이후 그대들이 말하는 이른바 우리 보수 수구세력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여 “머리카락 파세요, 파세요” 하며 길게 땋아 내린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의 나이 드신 분들은 서울 간 아들놈 학비 보태주려 머리카락을 잘랐고 먹고 살 쌀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예쁜 꽃을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팔았다. 또한 곰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고 전국에서 쥐잡기 운동을 벌여 쥐 털로 만든 일명 코리안 밍크를 외국에 내다 팔았다. 돈 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세계가 놀랐다. “저 거지들이 1억 달러 수출을 달성해!”하며 “한강의 기적”이라고 전 세계가 경이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조국 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여기에 월남전 파병은 우리 경제 회생의 기폭제가 되었다. 참전용사들의 전후 수당 일부로 경부고속도로가 건설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한반도의 동맥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우리 대한민국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국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대들이 수구 보수 세력으로 폄하하는 그때 그 광부와 간호사들, 월남전 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이 명심할 것은 그때 이방인의 시신을 닦으며 눈물짓던 간호사와 남의 나라 땅 수 천 미터 지하 탄광에서 땀 흘리며 일한 우리 광부, 목숨을 담보로 이국 전선에서 피를 흘린 우리 국군장병, 작열하는 사막의 중동 건설현장에서 억척같이 일한 그대들의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그대들 젊은 세대들이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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