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을 향한 경선 가도에 ‘막말의 대가’ 도널드 트럼프 돌풍이 일고 있다. 그가 뱉어내는 ‘막가파식’ 발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막말을 등에 업은 그의 지지도가 의외로 경쟁후보들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 대선에 뛰어들었던 6월만 해도 3%에 그쳤던 지지도가 지금은 20%대를 넘고 있다. 2위 그룹보다도 10%포인트나 앞서 예사롭지 않다.
88년부터 5차례나 공화당 대선 출마를 입질해오던 그가 후보 난립 상태의 이번 당내 경선에서 지지도 1위로 급부상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출마 기자회견에서 멕시코 불체자를 강간범, 범죄자로 몰아세우고 중국이 교활한 사업 관행으로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고 포문을 열었을 때 만 해도 제정신이 아니라고만 생각됐었다. 하지만 두달 사이 그는 막강 후원세력을 등에 업은 정치가문 출신이자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의 대항마로 기대했던 젭 부시를 누르고 있다.
자신을 비난한다는 이유로 베트남 전쟁 포로로 잡혔다 풀려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포로가 되면 진정한 영웅이 아니다’라고 비꼬아 전쟁 포로들을 분노케 하더니 이달초 폭스뉴스 주최 공화당 대선 토론에서는 자신을 성 차별자로 몰아간다며 폭스의 여성 간판 앵커를 ‘생리 때가 돼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는 식으로 맞받아 여성 비하라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누구도 함부로 이야기 할 수 없는 일종의 성역을 거침없이 넘나들며 속살을 까 보이고 있다. 그런데도 그의 지지도는 떨어질 줄 모르고 늘어가는 양상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아무도 꺼내지 못했던 미국의 아픈 이슈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며 적지 않은 미국인들이 속마음을 대신 달래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는 당나귀 같이 큰 임금의 귀를 본 이발사가 말을 못해 속을 끓이다가 명의의 조언대로 산속에 웅덩이를 파고 외쳤더니 병이 사라졌다는 ‘초딩 수준’의 옛날이야기지만 이번 트럼프의 광풍을 설명하기에 딱 알맞은 예화다. 트럼프가 긴 불경기에 시달려온 미국 중산층 이하 보수 백인층이 가지고 있는 가슴의 응어리를 시원하게 녹여주고 있는 것이다. “당나귀 귀는 당나귀 귀다!!!” 다시 말하면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소리치라는 말이다.
그의 지지도가 압도적으로 1위를 달린다고 해서 그가 공화당 후보로 당선돼 대선 고지를 향해 뛸 수 있다는 보증수표를 받은 것은 아니다. 우선 공화당 후보가 18명으로 난립한 상황이어서 경선 도중 많은 후보들이 중도 포기할 것이고 포기한 후보들을 지지하던 공화당 표심이 반 트럼프 세력으로 결집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그의 막말이 시원하기는 하지만 그가 대통령 선거 본선에 진출해 이민사회와 여성들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민주당 후보(현재로서는 힐러리가 유력)와 겨루기는 역부족이라는 계산이다. 이런 점이 공화당 지도부의 고민이기도 하다.
보수층뿐 아니라 대선을 결정할 중도층에서조차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지나친 좌편향 정책에 적지 않은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특히 임기 말에 들어선 최근에는 동성애 결혼 합법화와 미국의 일자리 축소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자유무역 확대, 불법체류자 추방 유예, 이란 핵협상 등을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밀어붙이며 업적 쌓기에만 몰입하는 인상이 짙다.
불경기와 불체자 문제, 중국의 도전장, 러시아의 영토 팽창 야욕, 핵을 앞세운 이란의 시비 등등 안팎으로 산적하는 미국의 당면 과제로 미국인들의 위기의식이 팽배해진 요즘, 트럼프는 오직 미국의 국익만을 내세우는 ‘캡틴 아메리카’를 자청하고 있다.
재봉사의 세치 혀에 속아 알몸으로 행진하던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소리치는 어린아이가 지금 미국 대선 판도의 트럼프와 비교되지 않을까 싶다.
내년 미국 대선 투표권자의 한사람인 기자가 트럼프에게 표를 던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많은 미국인들의 가슴앓이를 시원하게 풀어주고 아무도 말하려 하지 않은 임금님의 알몸을 과감하게 지적해준 어린아이와 같은 트럼프는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요즘 기성 정치판에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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