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호갱’은 아니신가요?” 요즘 한국에서 부쩍 유행하는 단어가 ‘호갱’이다. 호구와 고객의 합성어로 남들보다 비싼 값에 물건을 사거나 기업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서비스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어수룩하고 불쌍한 소비자를 일컫는 말이다.
‘고객 갑질’이니 ‘소비자 주권’이니 하는 시대에 웬 ‘호갱’이냐고 하겠지만 아이러니컬하게 기업들의 호갱질은 더 약삭빨라지고 규모도 커지는 것만 같다. 오죽하면 인터넷에 ‘호갱탈출법’이 도배를 하고 있을까.
한인타운의 경우 예전에 비해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아직 고객 서비스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있다. 최근 한인사회를 시끄럽게 한 대형 한인은행의 대규모 계좌폐쇄 사태도 그렇다. 경영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는 하나 고객을 우선시하지 않은 ‘호갱질’의 다름 아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변변한 돈벌이가 되지 않는 계좌를 정리해 앓던 이 빠진 것처럼 시원하고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됐겠지만 많은 잠재 고객들의 마음을 잃었을 것 같다. 실제 한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웹사이트를 살펴보면 이번 사태와 관련 직접 피해를 당하지 않았지만 괘씸한 마음에 이 은행의 어카운트를 클로즈하겠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글로벌 브랜드나 대기업들도 종종 고객을 호갱으로 전락시킨다. 특히 독과점 시장인 경우 ‘고객’은 온데간데없고 ‘호갱님’만 존재하는 느낌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이라는 디즈니랜드의 요금 정책이 좋은 예다. 얼마 전에는 새로 연간회원권을 선보였는데 자그마치 가격이 1,000달러가 넘는다. 약간의 내용만 바꿨을 뿐 얍삽하게 가격을 올린 것에 불과하다. 디즈니랜드의 경우 거의 한해도 거르지 않고 요금을 올리면서 급기야 성인 하루 입장료는 99달러로 치솟았다.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내년에는 ‘세 자릿수 가격표’를 달 것이 확실시된다. 10년 전의 53달러, 20년 전의 요금 33달러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10년 동안 디즈니랜드의 입장료 상승률은 6~7%로 같은 기간 미국 인플레율 2%에 비해 3배가 넘는다. 아무리 거액의 시설투자와 업그레이드를 했다지만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가격을 올려도 언제나 관광객들이 넘쳐나니 마음 놓고 호갱질을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내로라하는 케이블이나 인터넷 업체도 마찬가지다. ‘프로모션’이라는 이름으로 이용료를 할인해주는 것처럼 고객들을 끌어 모으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슬그머니 가격을 확 올린다. 문제는 이런 과다요금에 대해 항의를 하면 또 다른 서비스를 제시하며 선심을 쓰는 척 하지만 가만히 있는 소비자는 호갱이 되고 만다.
최근 한국의 금융전문가들이 펴낸 ‘놓치고 싶지 않은 내 돈’이라는 책에 등장한 한국의 호갱 실태는 더 충격적이다. 은행, 보험사 등 금융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고객은 ‘사골’로 표현되는 데 이는 최대한 우려먹어야 되는 존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은 가입할 때는 뭐든 다해줄 것처럼 평생의 동반자일 것처럼 느껴지던 직원들이 막상 서류에 사인하고 나면 연락조차 힘들어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지는 않는가 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일부의 이야기라 믿고 싶지만 업계의 부끄러운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솔직히 ‘고객이 왕은 아니다’. 하지만 왕은 아니더라도 속임수를 쓰지 않고 신뢰감을 주며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비즈니스의 기본이다.
‘만족한 고객은 친구 3명에게 이야기하지만 뿔난 고객은 3,000명에게 이야기 한다’ 는 말도 있다. 요즘처럼 소셜네트웍서비스(SNS)가 지배하는 시대에는 빠른 속도로 정보가 대량 공유되기 때문에 소비자를 기만하는 비즈니스는 도태되기 마련이다. 글로벌 일류 기업을 자처하던 폭스바겐조차 쇠락의 길을 걷는 것을 보지 못하는가. 한번 신뢰를 잃고 떠나간 고객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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