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99세…LA 출생 김영옥 대령의 누나
▶ 아메리칸 발레단 디자이너 활약…발레복에 페인트칠 방법 개발, 토니상·에미상 두 번씩 수상
지난 27일 오후 7시 뉴욕 맨해턴 32가 한인타운의 한 한식당에는 지긋한 나이의 한인들과 미국인들 10여명이 모여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조촐한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이날의 주인공은 바로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 의상 디자인계의 살아있는 전설인 한인 윌라 김(99·한국명 김월라·사진)씨다.
김씨는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이민 온 이민 1세대 선조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김순권씨와 이화여전(현 이화여대)에서 신학을 공부한 신여성 노라 고씨의 장녀로 미국의 전쟁영웅 김영옥 대령의 누나이기도 하다.
이날 모임은 1917년 LA 태생으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80년 가까이 살았던 뉴욕을 떠나 조카가 사는 시애틀로 이사를 하는 김씨가 수십년간 브로드웨이에서 동고동락해 온 동료 및 친구들과 함께 한 송별회 자리였다.
세련된 옷차림과 화려한 액서서리, 친구들에게 던지는 농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입술을 내미는 익살스런 표정 등을 보면 김씨가 올해로 백수(白壽)를 앞둔 99세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미주 한인으로는 유일하게 브로드웨이 뮤지컬계 최고의 상으로 꼽히는 토니상과 TV와 예술부문 최고의 상인 에미상을 두 번씩 거머쥔 김씨는 전 세계 문화예술계에서 백남준씨와 함께 가장 유명한 한국계 아티스트로 통한다.
세계적인 발레단인 아메리칸 발레단(ABT)의 무대의상 디자이너로 활약, 2007년에는 한인으로서는 최초로 ‘무대 예술 명예의 전당’(Theater Hall of Fame)에 이름을 올리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자신의 나이를 절대로 밝히지 않는다는 김씨는 96세이던 2013년에도 브로드웨이 쇼에 올라 갈 발레 공연 무대 의상을 스케치할 정도로 디자인에 대한 그의 열정은 여전히 뜨겁다.
발레, 오페라, 뮤지컬 등 수많은 공연들의 무대의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씨는 “처음 무대의상을 직접 디자인했던 50여 년전부터 단 한번도 그런 생각해보지 않았다”며 “예술가는 과거의 작품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만들 새로운 작품들에 대해 고민할 뿐”이라고 느리지만 확고한 목소리로 답했다.
김씨와 함께 작업했던 감독, 배우, 디자이너들은 그를 그 당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파격적인 소재와 디자인을 선보인 혁신적인 디자이너로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김씨가 1971년 발레 무용수 의상으로 스판 소재의 직물 ‘밀리스킨’에 페인트를 칠해 완성한 무용복은 당대 발레계 무대 의상에 충격을 가져왔다.
원래 화가를 꿈꾸며 캘리포니아 인스티튜트 오브 디 아츠(현 셰나르 미술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던 김씨는 발레복에 직접 페인트로 디자인을 칠했다. 당시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직물 위에 그냥 칠하기만 하면 세탁 후 지워지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뜨거운 다림질을 이용해 옷감 자체에 색을 입히는 방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냥 남들이 다 만들어온 똑같은 옷을 만드는 것이 심심했다”는 김씨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으면 어떤 작품이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예술가는 언제나 새롭고 창조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완벽주의자로 지나치게 깐깐하다는 평을 듣기도 한 김씨는 극단은 물론 배우들이 가장 사랑하는 디자이너이기도 했다.
1974년 김씨가 만든 의상을 입고 출연해 토니상(남우주연상)을 받았던 전설적인 배우 토미 튠은 “윌라 김은 배우 개개인의 체형과 몸동작을 정확히 관찰하고 이해한 디자이너”라며 “배우의 움직임을 최대로 극대화해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디자인해 모든 배우들이 그의 옷을 입는 것을 좋아했다”고 회상했다.
요양을 위해 시애틀로 떠나는 김씨에게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씨는 “아직 사용해보지 않은 소재들과 테크닉들이 많다. 다음 무대의상에서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고 싶다”며 뼈 속까지 예술가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1955년 프랑스계 미국인인 윌리엄 펜 뒤보아와 결혼했지만 1993년 사별했으며 슬하에 자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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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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