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시각(The Other View)’ 2015
LA 한인타운에서 오랫동안 화랑을 운영하던 메이 정이 퍼시픽 디자인센터에 오픈한 CMAY화랑에서 손남수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새로운 장소를 찾아가는 동안 멜로즈의 번화한 거리에서 길을 잃을 듯한 불안을 느끼며 낯선 거리, 낯선 장소에 서있는 느낌이 손남수의 그림세계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간이, 작은 창이 있고 창밖의 자연이 보이는, 조용하면서도 고적한 느낌이 드는 손남수의 그림을 그룹전에서 본 적이 있는데 낯선 세계에 혼자 조용히 창밖의 자연을 응시하고 있는 사람의 ‘홀로 있음’을 느끼곤 했다.
달관한 사람의 시선인 듯 번잡하지 않고 차분해서 조용하면서도 힘이 있는 그녀의 성격과 삶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그의 개인전을 본 것은 처음인데 몇 년 동안 꾸준히 사유하며 그려온 그녀의 그림과 내면세계에 일어난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스스로 선택하여 번잡한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홀로 있는지, 살다가 보니까 그렇게 홀로 조용히 있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가 선택한 그림의 주제는, 낯설고도 고요한 창이 있는 방의 내부와 창밖의 풍경의 대비에서 오는, 화면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 숨 쉬고 있는 인간의 존재감인데, 그림을 보는 사람이 그녀의 그림을 보며, 언젠가, 어디에선가 선뜻 그 홀로 있음의 상태를 느꼈던 것 같은, 순수한 의식만이 있는 절대 공간의 상태이다.
고독이나 쓸쓸함의 공간이라기보다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명상적 공간이고 하늘, 산, 바다의 친숙한 풍경들을 사실적인 방식으로 그린 그림인데도 이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정신의 공간이기에 초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토록 비어있고 한적한 공간은 깊은 응시와 집중으로 오랜 시간에 걸친 존재와 공간의 탐구에 의해 형성되는데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붓 터치가 화가의 내면적 존재의 힘과 일치하며 화가의 삶과 필력의 내공을 드러낸다.
미니멀한 구성과 색조이지만 탄탄하게 느껴지는 긴장감은 적조한 삶 중에서도 화가를 지탱하는 강한 삶의 의식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고 구상과 추상을 대비한 공간의 색채와 형태의 집중적인 탐구가 보여주는 시각 조형의 힘이기도 하다.
예전에 그녀를 만나면 늘 경이로움을 느끼곤 했는데 차분하고 우아한 인상에 비해 의외로 삶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로 가득한 내면세계를 지닌, 독창적이고 독립적인 정신세계로 홀로 서 있는 매력이 넘치는 선배라는 생각에 혼자 웃음을 짓곤 했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그녀의 그림을 마치 그녀의 마음을 들여 다 보듯 한참 들여 다 보며 새로운 변화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린다.
창밖의 풍경이 밝고 방의 내부가 다소 어두웠던 예전의 그림에 비해 창은 점점 더 커지고 , 공간의 내부가 더 밝아지고, 오래 응시해온 벽에 색조가 밝아지며 살아 숨 쉬는 추상적 시각의 요소로 변화하고 내부와 외부를 차단하는 벽이 사라지고 창문도 벽도 없는 바다 풍경만이 보이기도 한다.
오랫동안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듯 시시각각 변화하는 바다의 색조가 깊고 다채롭다.
도시 풍경들은 색채와 형태의 장엄한 건축적 조화로 빛이 나기 시작하고<사진> 사선으로 강하게 화면을 가로 지르는 다리가 보이는가 하면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적 지평이 열려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조화와 힘으로 빛나는 시각적 진화가 일어났음이 드러나는데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일어난 시각의 변화를 감지하는 일이 무척 기쁜 전시였다.
내부와 외부의 공간을 나누던 벽의 오랜 탐구는 마치 베일을 벗은 듯 화가와 세계와의 일치를 이루어내 마침내 내면의 빛에 달한 듯 풍경 전체가 조용히 빛나는 열린 세계를 보여준다.
자연과 문명, 추상과 구상, 자아와 세계의 관계는 현대회화가 어디에 와있고 무엇을 주시하는가 하는 주된 관점이기도 하다.
그녀의 그림처럼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그녀와 차를 마시며 새로운 그녀의 그림세계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박혜숙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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