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저녁 6시쯤 산타모니카 프리웨이의 서쪽을 항해 달린다.
바다를 향하는 길 위의 저녁노을은 매일 매일 색조가 다르고 구름이 낀 요즘은 더욱 더 아름답다. 나무들은 검은 녹갈색으로 빛나고 연보라빛이 나는 청회색 구름사이로 태양의 주황빛이 타오르는 광경에 경탄하곤 한다.
하늘은 때로는 은회색, 때로는 자주 빛을 띄우며 밤하늘로 변하는데 자동차 속에서 바라보는 시선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움직이기에 더욱 큰 기쁨을 준다.
풍경은 시시각각 변하고 화가들은 빛에 따라 매 순간 변하는, 유동하는 공간의 느낌을 화면에 포착하기위해 애쓴다. 아마도 디에고의 그림 속 그 사람<사진>은 잠깐 화가의 시야에 나타났다가 사라졌을 것이다.
유쾌한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그 그림을 보며 칠면조를 등에 메고 걷는 그 사람을 보고 있기도 하지만 그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화가의 기쁨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그림을 그린 디에고 리베라(1886~1957)의 다른 그림을 보면 묘사력이 대단한 화가임을 알 수 있는데 그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재빨리 스케치를 하거나 유심히 그의 모자, 그의 등, 그의 걸음걸이를 바라보고 있는 화가의 시선을 상상할 수 있다.
오래 전에 이 그림을 발견했는데, 커다란 기쁨을 주는, 사람에 대한 깊은 사랑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스쳐지나가는 한 사람의 존재가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마치 다정한 친구를 기억하듯이 가슴에 들어와 찬다.
일생 그림을 그리며 매일 혼자서 오랜 시간을 화실에서 견뎌내는 삶을 살아왔기에 때로 그림은 이 세상과 어떤 관계를 갖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갖곤 하는데 이 한 장의 그림을 보며 사람을 그린다는 것이 얼마나 소박하고도 큰 기쁨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가 희망을 느낀다.
LA 카운티 뮤지엄에서 디에고 리베라와 피카소의 작품들을 전시 중이다.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피카소의 영향을 받기도 했던 디에고 리베라는 조국 멕시코에 돌아간 후 서구 미술사조의 흐름을 과감히 떠나 소박한 민중의 삶과 멕시코 혁명의 장대함을 그림으로 남겼다.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스쳐지나 가는 모습을 늘 유심히 바라보곤 한다. 언제부턴가 그들은 스쳐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다. 나와 같은 삶의 무게를 안은, 깊이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로 느껴지곤 한다.
그들의 발걸음이 무거우면 나의 마음이 무겁고 활달하고 명랑하면 나의 마음이 밝아진다.
나의 화실이 있는 가난한 거리에서 늘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걷는 엄마, 거리에서 꽃을 팔고 있는 소년, 혼자 걷고 있는 사람, 나뭇잎을 긁어모으는 사람, 나무 위에 올라가 나무를 자르는 사람, 땅을 파는 모습, 요즘엔 화실 앞에 빌딩을 짓고 있어 지붕 위에 올라가 일하는 사람들을 매일 지나친다.
나의 그림은 화랑에 걸리고 그들은 나의 그림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00년 전의 화가의 그림이 그토록 깊이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듯이, 언젠가 나의 그림이 누군가의 마음에 위로가 되고, 그들의 침묵과 괴로움, 꿈과 열망을 드러낼 수 있도록 오늘도 나는 묵묵히 화실로 향한다.
뉴스에서는 시대의 불안을 이야기하고 겨울 추위가 성큼 다가왔다.
비가 온 후라 공기가 코끝에 청명한데 새삼 사라지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느끼며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본다.
<
박혜숙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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