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 2016’
몇 년 전부터 내가 살기 시작한 샌타모니카의 집 뒤뜰에는 조각가 유명하 씨의 작업실이 있다.
커다란 감나무 아래 보겐딜리아 꽃과 키 큰 대나무 사이에 대나무 발을 사용해 지은 작업실이 서늘하고 한적하다. 모아둔 돌들과 많은 조각품들이 그곳에 놓여 있어 가끔 들러 요즘은 어떤 작업을 하나 들여다보곤 한다.
그는 10여 년 전 환갑이 지난 나이에 샌타모니카 칼리지의 조각과를 한 3년 다니며 스스로 현대조각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부인과 돌아가신 장인도 조각가여서 집안 곳곳에 하얀 대리석으로 조각한 기품 있고 아름다운 성상이 있다.
추상적인 현대조각을 하기 전에는 불상을 주조하기도 하였기에 그의 작업실 곳곳에 크고 작은 불상들이 보인다. 구석구석 모아놓은 종 모양의 앤티크들, 등잔, 그가 판각해 놓은 글씨들을 보며 그의 심미감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누린다.
하루는 그를 따라 대리석을 파는 곳에 가보았는데 물감 사러 아트스토어에 늘 다니는 화가의 일상과 달라 신기했다.
돌덩이 하나가 얼마나 비싼지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멋진 돌들을 감상하느라 무척 기뻤다. 그래서 돌 사러 갈 때 꼭 같이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곤 한다.
조각을 영화소품으로 사용하는 아트픽이라는 화랑을 통해 가끔 작품을 영화에 빌려주고 1년에 한번 가톨릭 미술가 협회전에 전시하기도 하지만 그 외 작품전시는 거의 하지 않는다. 딱히 전시에 관심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그는 매일 작업실에서 혼자 작업에 골몰한다.
좋은 조각이 무엇인가를 늘 생각하고 구상하는 듯 스케치북에 드로잉을 해 놓는데 나는 가끔 그 스케치북을 들여다보곤 한다. 등을 만들기도 하고 의자를 만들기도 했지만 유용한 것은 아닌 조각이 늘 그의 마음에 있다. 끝없이 추구할 수 있는 순수조각의 매력일 듯하다.
한 몇 년 두 개의 나무, 돌덩어리가 함께 있는 추상조각을 하더니 그의 작업의 큰 변화를 보여주는 새로운 작업<사진>이 탄생했다. 무척 아름다워서 경탄이 절로 나오는 작품이다.
친척 소년이 쓰다버린 활을 들여다보다가 영감을 얻어 재활용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활의 곡선과 재질을 이용한 감각이 무척 빼어나고 현대적이다.
몇 10년 무거운 돌을 다듬으며 보낸 오랜 시간의 내공이 번쩍하며 빛을 발한 듯, 한순간에 다른 차원의 작품세계가 탄생했다.
아무 것도 아닌 차이인 듯한데 엄청난 차이를 창조하는, 오랜 시간의 성찰이 예술에 작용하는 미묘한 창조의 순간이 있다. 작가의 삶과 형상과 손끝이 일치하여 이루어 내는, 우연히 선뜻 나타나는 듯하지만 몇 10년의 수련이 있었기에 드러나는 새로운 창조의 순간이다.
조각을 하지 않을 때 그는 조약돌과 구리선을 사용해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을 상징하는 평면작업을 만들어 고마운 이들에게 선물한다. 우리 조상들이 복을 기리는 민화를 그렸듯 오병이어의 성경 얘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한다고 한다.
일요일 새벽마다 성당 노인들을 위해 20여명 분의 음식을 만드느라 부부는 분주하고 집안에서는 손자손녀가 뛰어다니고 늘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편안한 마음으로 늘 쉬는 듯 노는 듯 그는 연장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
박혜숙 화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