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rry James Marsha“Untitled”, 2011
LA 다운타운 그랜드 애비뉴에 있는 현대미술관(MOCA)에서 현대미술사에 한 획을 그을 중요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미술사에도 미술계에도 흑인을 주제로 한 흑인에 의한 전시가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오로지 흑인만을 그리고 흑인의 일상과 역사를 탁월한 거장의 필치로 그려낸 케리 제임스 마샬의 대작들이 전시 중이다.
미술관에서 수많은 흑인 관람객을 보는 일도 특이한 경험인데 강렬한 검정색 흑인 피부와 대비한 선명한 색조의 조화와 형상들의 특이하고도 확실한 구성, 선명한 비전과 메시지가 인상적이다.
함께 전시를 보러간 화가 친구는 그림을 보며 소름이 끼치는 전율을 느끼는 건 처음이라며 정말 볼만한 전시라고 탄성을 지르곤 했다.
미술계의 외곽에서 오로지 성실히 흑인만을 그려온 마샬은 시카고에 거주하는 화가인데 LA의 오티스 미술대학에서 그림을 배웠다. 그가 대학을 다닐 때는 추상과 개념미술, 미니멀 아트의 시대였기에 인물화를, 더구나 흑인만을 그리는 그의 화풍이 미술계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그 오랜 시간동안 어떻게 자신의 확신에 따라 그토록 성실히 작업해 올 수 있었는지 그의 고독과 강인한 인내의 시간을 상상해 본다.
이발관, 거리 등 일상생활의 실내와 거리 속에 등장하는 흑인들의 모습은 인종차별과 가난의 고난 중에도 마치 빛을 뿜어내듯 밝고 명랑하고 신실하다. 그의 그림이 어렵지 않고 쉽게 다가오고 흑인역사의 어두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재미있고 유머가 넘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가 흑인 공동체의 긍지와 이상을 그의 사명으로 삼고 일상 속의 흑인이건 고난 중의 흑인이건 인간으로 태어남의 천부적 내면의 빛을 발하는 선지자의 모습으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포크아트(Falk Art)를 그의 표현방식의 근본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살아 나가는 흑인 공동체의 이상을 애초부터 확실한 그의 예술관으로 시작했기에 그의 그림은 확연하고 선명하다.
탐욕과 무지, 불의의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흑인들의 정체성을 주제로 삼아 ‘보이지 않는 인간’ 이라는 제목으로 배경이 까만 화면에 눈의 흰자위와 흰 치아만 보이는 그림을 시작으로, 자신을 표현하기 보다는 거장들이 무엇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자 하는 것을 위대한 예술성으로 구현할 수 있었는가를 탐구했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거장들의 정신과 표현방식의 달인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에 그림의 곳곳에 그가 탐구한 미술의 모든 작업방식이 담겨있고, 예민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으로 보는 이들을 설레게 한다.
마틴 루터 킹, 말콤 X, 제임스 볼드윈, 마할리아 잭슨, 마이클 잭슨, 오바마에 이르기 까지 미국정신에 기여한 흑인의 정신적 지주들의 대열에 이제 케리 제임스 마샬이라는 이름의 화가가 서 있다.
현재의 미술계를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미래의 예술가들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는 포부는 미술의 역사를 바꾸겠다는 과감한 의지로써 그의 그림을 바라보는 순간 흑인 청년의 내면이 바뀔 듯 고도로 지성적이고 호소력이 강하다.
그가 그린 흑인들은 평범한 일상의 곳곳에서 후광으로 빛나는 듯 번뜩이는 미소로 흰 치아를 드러내며 마치 성자나 예지 자처럼 내면의 빛으로 깨어나 있다.
선명한 비전에 고도의 예술성이 더해져 살아있음에 대한 긍정으로 그가 평생 탐구한 위대한 예술의 정신, 즉 인간이 인간답게 대동하여 함께 살아나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어떠한 시련도 함께 살아낼 수 있을 듯한 새로운 인간으로의 전환을 불러일으키는 그림들이다.
7월3일까지 전시하는데 매주 목요일(오후 5시부터 8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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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숙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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