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새라와 닥터 아서 아이작 리처드.
작년 만우절 프로포즈 하며 “우리 내일 결혼하자”
덴버·캔사스 시티·독일 등 흩어진 가족 신시내티 호출
맨해튼서 웨딩드레스 급공수... 우여곡절 기적처럼 결혼식
딸의 결혼식 참석한 장인은 다음날 영면
“이번엔 제대로 된 결혼식” 지난 달 두 번째로 올려
새라 리처드와 와이어스 킬립은 지난 달 3일 신시내티의 한 호텔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런데 이들은 1년전에도 결혼식을 치른 적이 있다. 딸의 결혼식을 꼭 보고 싶어 했던,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위해 급히 치른 예식이었다. 얼마나 급했나 하면 단 하루, 24시간 내에 모든 준비를 마쳐야 했던 초급행 결혼식이었다. 이들의 사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2016년 4월1일 황혼녘 신시내티에서 킬립은 새라에게 프러포즈하면서 놀라운 약속을 했다. 무슨 수를 써서든지 장인어른 될 분을 모시고 결혼식을 치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 벌써 1년째 희귀암을 앓고 있던 닥터 아서 아이작 리처드는 하루가 다르게 병세가 악화되고 있었고, 얼마 시간이 남아있는지도 보장할 수 없는 시점이었다.
“아버님은 제게 새라가 결혼식장에 걸어 들어가는 것만 볼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정말 없었어요. 그때 갑자기 제 입에서 만우절 거짓말 같은 말이 나왔습니다. 우리 내일 결혼하면 어떨까?”
방금 청혼 받은 사실만으로도 감정이 벅차있던 새라는 이게 무슨 소린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녀의 부모는 신시내티에, 킬립의 부모는 미주리주 캔사스 시티에 살고 있었고, 그녀의 두 자매 중 하나는 덴버, 또 한명은 독일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맨해튼에서 살고 있었고, 많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의료진은 이미 아버지의 편안한 임종을 위해 호스피스 케어를 불러놓은 상태였으니 이건 불가능을 넘어서 미친 소리나 다름없었다. “말도 안돼, 농담이지?” 그녀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새라를 아내로 삼게 된 것 자체를 기적이요 도전으로 생각해온 킬립은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장난감회사 원더테크의 수석 간부 킬립(35)이 콩데나스트의 경영회계디렉터 새라(30)를 만난 것은 2011년 메모리얼 데이였다. 맨해튼의 한 바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던 킬립은 장난기가 발동해 “여기서 누구든지 제일 예쁜 여자를 찍어봐. 내가 가서 전화번호 따올게”라고 큰소리를 쳤고, 친구들은 주변을 둘러본 후 새라를 가리켰다.
“파란 눈에 금발머리가 아름다운 너무도 멋진 여성”이었다고 킬립은 회상한다. 거기 와있던 수많은 얼굴들 중에서 오직 그녀의 얼굴만 보였다는 고백이다. 그 이후의 연애담은 생략해도 되겠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지난 몇 년 동안 서로의 가족을 방문하며 할러데이를 함께 보내는 사이가 되었다.
1년 전 아버지를 위해 결혼식을 올렸던 새라와 킬립이 지난 6월 다시 한번 정식 결혼식을 올렸다.
2015년 7월 콜로라도에서 새라의 가족과 여가를 보내면서 킬립은 미래의 장인 닥터 리처드에게 플라이 피싱을 가르쳐주었고, 두사람은 산에서 함께 곤돌라 라이드를 타는 등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때 갑자기 닥터 리처드가 말했다.
“자네 말이야, 새라와 결혼하려면 나의 축복을 받아야 하네” 결혼 승낙이나 다름없는 말을 듣고 킬립은 뛸 듯이 기뻐했고 곤돌라는 더욱 심하게 흔들렸다.
“우리가 결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말씀을 여러번 했습니다. 실망시켜드릴 순 없었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신부의 아버지를 그냥 눈 감게 할 수는 없었다는 그는 새라를 설득했다. 자신은 1년 전부터 늘 준비를 해왔다면서 일단 시작만 하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가족은 대기 중이야. 내가 전화만 걸면 즉시 비행기에 올라타 내일 올 수 있을거야”
처음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새라는 아버지가 얼마나 결혼식을 보고 싶어 했는지 다시 한번 상기한 후 “한번 해보자”고 동의했다.
신랑신부의 모습을 닮은 웨딩케익.
그때의 시간이 저녁 7시15분. 킬립은 예식 시간을 다음날 같은 시각으로 정했고 24시간 남겨놓은 상태에서 장인 소원성취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일단 새라의 친정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함께 샴페인을 터뜨리며 약혼을 축하한 다음 두 사람은 ‘영혼의 예식’이라고 명명한 이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새라는 맨해튼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상황을 설명한 후 지금 바로 패션스토어 자라(Zara)로 달려가 흰 드레스를 사이즈가 다른 걸로 3벌 구입해 밤사이(overnight) 신시내티 집으로 배송해줄 것을 부탁했다.
친구가 자라에 도착했을 때 스토어는 문을 막 닫는 중이었다. 하지만 사연을 듣고 난 직원들이 다시 문을 열어주었고 드레스를 찾기 위해 아직 뜯지 않은 박스들까지 오픈해주었다. 드레스를 사자마자 그녀는 가장 가까운 페덱스로 달려갔다. 그러나 밤 9시를 넘긴 시각이라 오피스는 문을 닫았고 더 이상 패키지를 받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그녀는 그 앞에서 울기 시작했고 직원들에게 제발 패키지를 부쳐달라고 읍소했다. 한쪽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운전자가 다가오더니 그녀가 들고 있던 박스를 가져가 연필로 주소를 써넣었다. 그리고는 영수증도, 추적번호도 주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다음날 아침 패키지는 기적처럼 새라에게 배달되었다.
기적은 계속됐다. 킬립의 부모와 자매 두명이 시간에 맞춰 도착해 새라의 친정집을 성스럽고 멋진 예식장으로 꾸며주었다. 캔사스 시티에서 작은 조각품과 선물용품 디자이너로 일하는 킬립의 어머니 캐시는 코스코에 들러서 장미를 비롯한 예쁜 꽃들을 사다가 신부 부케와 신랑 부토니아를 만들고 테이블을 장식했다.
다른 가족들은 숲에서 찾은 버드나무 가지를 이용해 카노피 덮개를 만들었고, 가족 친구인 랍비 루이스 캄라스에게 부탁해 혼례식 주례를 부탁했다. 그렇게 결혼식은 2016년 4월2일 막 해가 저물었을 때 가족의 리빙룸에서 거행됐다.
턱시도를 입은 닥터 리처드는 딸이 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만면에 행복한 미소를 띠었고,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과 함께 웃으며 그가 가족과 함께 보냈던 멋진 시간들을 추억했다. “그런 다음 몹시 피곤해 하셔서 누우셨죠. 그리고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셨어요”
닥터 리처드는 다음날 아침 영면했다. 가족들은 하루 24시간 동안 겪은 엄청난 일들과 함께 행복과 슬픔의 극단을 오가는 감정의 파고에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새라는 전했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는 소원을 이루신거에요. 그리고 그게 우리가 정말 원했던 것이죠”
이들이 지난 달 다시 한번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굉장히 힘든 시간들이었다”고 말한 새라는 그러나 차츰 마음과 정신이 안정되고 강해지면서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고 전했다.
두 사람의 결혼식 주례는 랍비 캄라스가 다시 한번 맡아주었다. 어머니 캐시 리처드가 신부를 데리고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마치 남편이 함께 있는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두 번째 결혼식도 놓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새라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아버지의 존재를 느낀답니다. 식장으로 걸어 들어오면서 생각했어요. ‘강하게 마음먹자’, 그리고 그 자리에 아버지가 계시다면 얼마나 좋았을 지를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우리 둘을 무척 자랑스러워하시고 기뻐하셨을 거에요”
<사진 Andrew Spear/NY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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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뉴욕타임스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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