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수·학문·평화의 상징으로 친숙, 철원·연천·파주 통제지역서 월동
▶ 5~10개월만에 1.5m까지 훌쩍 커, 무리생활 하며 민주적 의사소통

강원 철원군 민통선 내 철원평야를 찾은 재두루미가 힘차게 비행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500원짜리 동전 앞면에는 목이 길고, 다리가 길고, 부리가 긴 새가 있죠. 이 새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두루미라는 걸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두루미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또 두루미를 실제로 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이 새가 전세계적으로 동북아시아에서만 서식하며 3,000개체 미만이 생존해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물로 분류되어 보호받는 새라는 것을 안다면 얘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두루미라는 이름은 “뚜루루” 하고 우는 울음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일본에서도 ‘쭈루(tsuru)’라는 유사한 이름으로 불리는 친숙한 새입니다. 예로부터 조선시대 문관의 관복에 쓰이는 흉배, 십장생 중 하나에 두루미가 쓰일 정도로 한민족에 있어서는 학문과 행운, 장수의 상징입니다.
■좀처럼 보기 힘든 귀한 새 두루미
조류학 관련 연구실에 근무하면서 재미있는 문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조류학으로 유명한 윤모 교수가 학교에 재직 중이라 문의를 받는 일이 많았는데요, 하루는 “조류연구실이죠? 학이 맞나요? 두루미가 맞나요?”라는 문의가 온 겁니다. “어떤 새를 물어보는지 모르겠지만 예로부터 학은 덩치가 크고, 목이 길고, 부리가 길고, 다리가 긴 새를 통칭하는 것이고 두루미는 이들 중 두루미과에 속하는 한 종이며 정수리가 붉은 두루미라고 해서 단정학으로 불리니 어느 것으로 말씀하셔도 맞는 말“이라는 답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지금 친구랑 내기를 하고 있어서 정확히 어떤 것이 맞는지 알려줘야 한다“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답변을 강요했습니다. 이는 요즘처럼 검색엔진이 활발히 사용되지 않는 시절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에피소드이지요.
두루미는 두루미목(Gruiformes) 두루미과(Gruidae)에 속하는 조류로 학명은 ‘Grus japonensis’ 이며 전 세계에 15종이 존재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가 월동을 하거나 우리나라를 지나갑니다. 소수가 발견되는 종으로는 검은목두루미, 캐나다두루미, 시베리아흰두루미, 쇠재두루미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두루미는 겨울철에 철원, 연천, 파주, 강화, 새만금 지역에서 월동하며 이중 철원과 연천은 가장 큰 월동지입니다. 두루미는 과거 인천지역 갯벌에서(현 인천시 서구 경서동) 서식했으나 서식지가 매립되면서 현재의 민간인통제지역인 철원, 연천, 파주 등지로 서식지를 옮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덩치에 비해 놀라운 두루미의 폭풍성장
두루미는 키가 1.5m에 이르며 몸무게는 10㎏ 정도로 매우 큰 새이지만 이 정도 크기로 자라는데 5월에서 10월까지면 충분합니다. 이후 우리나라로 월동하기 위해 800~1,000㎞ 가량을 이동할 수 있습니다.
성체로 성장하기까지 15~20년이 걸리는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폭발적인 성장입니다. 이는 습지에서 번식하고 개방지역에서 포식자를 피해 알에서 깨자마자 활동을 해야 하고, 겨울철 러시아 아무르강 유역의 강한 추위를 피해 남하해야 하는 대형 조류의 숙명으로서 오랜 기간 동안 진행된 진화의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두루미를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관심 깊게 바라본 것은 두루미의 가족생활입니다. 처음 두루미를 접했을 때 어른 새 두 마리가 어린 새를 가운데 둔 채로 강한 음성으로 경고음을 내지르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요. 다른 조류들이 사람을 피해 도망치는 것과는 달리 사람에 대해 접근하지 말라며 위협을 하는 듯 한 모습은 잊을 수 없습니다.
일반적인 조류가 둥지에서 자라나 번식지를 떠난 후 무리생활을 하거나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것과는 달리 두루미는 다음해 번식시기 전까지 어린 새를 돌보는 가족군을 유지합니다.
즉 아빠, 엄마, 아이가 함께 생활하면서 겨울을 보내는 겁니다. 부모 두루미는 새끼 한 두 마리를 보살피며 먹이를 잘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주변의 천적이 접근하는지 알 수 있도록 교대로 망을 보는 행동을 합니다. 이러한 임무교대는 굉장히 엄격한 편이어서 수컷이 먼저 망을 보는 동안 암컷이 먹이를 먹고, 일정시간이 지난 후 암컷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 수컷이 먹이를 먹기 시작하는 것을 반복합니다. 반면 어린 새가 없는 부부는 상대적으로 경계활동과 임무교대 행동이 느슨한 편입니다.
■두루미의 사회성과 의사소통
두루미는 가족군을 이루어 행동하지만 휴식을 취하거나 야간이 되면 집단을 이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야간에 무리를 이루어 잠을 자는 곳은 먹이를 구하는 농경지와는 달리 하천이나 습지입니다. 그래서 두루미는 야간에 잠을 자는 곳과 낮에 먹이를 구하는 곳 사이를 하루 사이에 이동하는 일주행동을 보여줍니다.
두루미는 수심이 얕은 하천이나 저수지, 겨울철에는 빙판 위에서 잠을 자는데 천적의 접근을 감시할 수 있도록 크게 무리를 지어 잠을 자며, 천적이 접근할 때 물을 건너기 쉽지 않은 것을 이용합니다.
무리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주변을 잘 감시할 수 있어 효율적이며 서로 가까이 있어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등 장점도 있습니다. 반면 개체간 싸움이나 미아발생 등 불이익도 있으니 무리의 크기는 이익과 불이익의 절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루미는 번식쌍을 이루지 않는 경우 여러 마리가 집단을 이루어 살아가며 대부분 2, 3년생 미성숙개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청소년들이 또래끼리 어울려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두루미들 또한 미성숙개체들은 무리를 형성하기를 선호합니다.
무리가 클 경우 힘을 합쳐 접근하는 포식자를 감시하거나 대응할 수 있고, 장래에 쌍을 형성할 수 있는 잠재적 이성을 만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이익이 될 겁니다. 수컷의 경우 잠재적 경쟁자와 경합(싸움)을 하면서 경쟁력을 기르며 사회성을 높일 수도 있게 됩니다.
학춤으로 알려진 두루미의 춤은 번식을 하는 암수 사이에 나타나지만, 경쟁자간 경합에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들이 뛰고 날갯짓하고 부리로 쪼는 행동이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여 학춤으로 불렀습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두루미의 크고 의젓한 행동을 흠모하여 연회에서 학춤을 즐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춤의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닌 상호간의 교감 및 경쟁 등이 내재된 것으로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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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화 국립생태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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