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대선 국면에서 빈곤에 시달리는 대중에 반부패운동 자극 가능
▶ 미 의회, 러시아의 대선개입에 분노,지난해 작성 입법화…추가제재 근거될 수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반정부 시위
미국 재무부가 발표한 러시아의 "매우 중요한 고위 정계 인사들과 올리가르흐(러시아식 정경유착을 기반으로 재벌)" 명단과 그들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관계 및 그들과 그 가족들의 총재산에 관한 보고서가 미국과 러시아 관계, 러시아 국내 정치와 대통령 선거 풍향에 큰 파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궁 대변인은 29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크렘린 보고서'에 대해 오는 3월 18일 예정된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직접적이고 명백한 시도"라고 예민한 반응을 나타냈다고 영국의 BBC 방송 등이 전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다만 "그래 봐야 (러시아 대선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짐짓 냉소했으나, 러시아 국책은행인 VTB의 안드레이 코스틴 총재는 지난주 파이낸셜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미국이 이 보고서를 근거로 러시아에 추가제재를 가할 경우 "선전포고"와 같은 것이 될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러시아 최대 은행인 국영 스베르방크 총재 헤르만 그레프도 이 매체와 인터뷰에서 추가제재 시 "(러시아의 반격으로) 냉전은 애들 장난처럼 보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BBC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미국에서 관련 입법이 발효된 후 러시아 최고위 기업인들과 비공개 대책회의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명단에 오른 사업가와 사업체는 앞으로 언제든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당장 제재 명단에 오르지 않더라도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활동이나 사업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러시아 재벌들은 이런 우려 때문에 이미 푸틴 대통령과 거리 두기를 하거나 러시아 기업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도와줄 것을 호소해왔으며, 미국 측 인맥을 총동원해 미국 재무부, 국무부, 정보기관 등을 상대로 자신들이 보고서 명단에 들어가지 않도록 로비 활동을 펼쳐왔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유럽국장과 주폴란드 대사를 지낸 대니얼 프라이드는 파이낸셜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내 친구 중에는 (러시아 측이) 여러 차례 접근해오지 않은 사람이 없다"며 러시아 측 인물들은 "상당한 액수의 돈"을 제시하며 명단에서 빠지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고 설명했다.

2차대전 레닌그리드 봉쇄 해방 75주년 기념 헌화하는 푸틴
크렘린 보고서는 러시아의 미국 대선개입에 분노한 미국 의회가 지난해 공화, 민주 가리지 않고 초당적으로 입법을 추진했으며, 이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그해 7월 마지못해 서명해야 했다.
크렘린 보고서에 대해 새로운 내용 없이 기존 제재 대상 인물과 사업체를 재탕해 내놓은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의회의 요구가 워낙 강한 데다 새로운 명단을 공개하지 않으면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에 유화적이라는 비판에 부닥칠 것이라고 프라이드 전 대사는 말했다.
크렘린 보고서는 미국과 러시아 관계, 러시아 기업의 대외 사업에 미칠 영향 외에 3월 대선을 앞두고 야권의 선거 거부를 의미하는 '유권자 파업' 운동이 시작된 상황에서 러시아 내정에도 어떤 영향을 미칠지 러시아 관측통들은 주목하고 있다.
미국의 외교안보분석업체 스트랫포는 앞서 27일 보고서에서 러시아에서 유가와 경제난 제재 등으로 인해 "빈곤율이 확대되고 만연한 부패와 소수 엘리트가 독점한 터무니없는 부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이들 엘리트의 재산 목록을 낱낱이 밝히는 명단은 대선을 맞아 크렘린에 불똥이 튀게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스트랫포가 러시아 국내에 미칠 것으로 예상한 강력한 파장은 두 갈래이다. 하나는 러시아의 정치·경제 엘리트들은 푸틴 대통령이 자신들의 봉토를 운영하는 자유를 주는 것을 전제로 푸틴에게 충성해 왔는데, 크렘린 보고서로 인해 푸틴의 보호 능력에 의구심을 품게 되고 그것이 충성도에 미칠 심리적 영향이다.
"최근년에 이미 많은 엘리트가 여러 가지 문제에서 푸틴의 직접적인 명령도 듣지 않는 양상이 나타났다"고 스트랫포는 지적했다. 이에 따라 푸틴 주변엔 극단적 충성파만 둘러싸고 있어 더욱 독재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과거 크렘린 궁의 내분이 정권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푸틴 대통령의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에게 더욱 위험스러운 영향은 빈곤에 시달리는 러시아 국민 대중에게 이 보고서가 가할 충격이다.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41)가 이끄는 반부패운동은 날이 갈수록 호응을 받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에서 일어난 시위 1천100회 가운데 3분의 2가 부패와 경제난에 초점을 맞췄다고 스트랫포는 분석했다.
러시아 대중의 반부패 시위는 지금까지는 올리가르흐보다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 같은 고위 정치인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거대한 부의 실태가 드러날 경우 대중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크렘린은 "일부 제 살을 도려내는 한이 있더라도 반부패운동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수도 있다"고 스트랫포는 전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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