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당국 개입에 약달러 기조 유지, “1,000원 초반대로 하락” 전망도
▶ “글로벌 교역 질서 훼손 안돼” 날세운 라가르드
“외환시장의 ‘내로남불’이다. 우리나 중국 등을 환율조작국으로 몰아붙이더니 미 재무장관은 아무렇지도 않게 시장개입을 한다. 앞으로 환율전쟁의 파고가 상당할 듯싶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의 환율 발언이 글로벌 외환시장의 판을 흔들고 있다. 므누신 장관은 24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미국의 무역 기회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달러화 약세가 분명히 미국에 좋다”고 말했다.
므누신 장관의 발언은 미국 정부가 무역수지를 개선하기 위해 달러화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돼 글로벌 달러 약세를 부추겼다. 달러 약세는 미국 기업의 수출가격을 떨어뜨려 자국 기업의 수출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수출을 주력으로 하는 국가들이 자국 통화의 약세를 유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를 미국은 끊임없이 견제하고 협박하고 있다. 환율조작국 카드를 내미는 탓에 우리 역시 미국의 약달러 정책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고위관계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국제포럼장에서 환율 구두개입을 하고 있다”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국제사회의 비난도 아랑곳하지않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외환시장에서 원화의 출렁임은 컸다. 원·달러 환율은 므누신 장관의 달러 약세 옹호 발언에 하락으로 장을 시작했다. 장중 1,060원이 깨지자 우리 외환 당국도 방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이날 종가는 11원60전 급락한 1,058원60전을 기록했다. 지난 2014년 10월30일(1,055원50전·종가 기준) 이후 3년 3개월 만에 가장 낮다. 1,060원대 방어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던 외환 당국이 시장과 치열한 샅바싸움을 벌였지만 결국 붕괴를 막지는 못한 것이다. 이 추세라면 1,000원대 초반까지도 뚫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달러 환율이 장중 1,060원 밑으로 내려간 것이 이날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말부터 가파른 강세를 탔던 원화 환율은 8일에도 장중 1,058원60전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이때는 외환 당국이 15억달러가량으로 추정되는 달러 매수물량을 풀어 곧바로 1,060원 위로 다시 끌어올렸다. 이에 놀란 시장은 이후 계속된 달러 약세에도 1,070원 근처에서 원·달러 환율을 유지하고 있었다. 1,060원 사수를 위한 외환 당국과 시장의 샅바싸움 1차전은 당국이 이겼던 셈이다.
하지만 이번은 얘기가 달랐다. 무역적자를 줄이겠다고 나선 미국이 보호무역 수단으로 약(弱)달러를 공개 조장하면서다. 이에 주요6개국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이날 3년여 만에 최저치인 88.87까지 밀렸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이 무역협정 재협상에 대한 압박수단으로 약달러를 조장하면서 시장은 달러 매도의 신호를 받았다”며 “한국에 타격이 큰 세탁기·태양광 제품에 세이프가드 조치를 한 것도 원화 강세 유도 의도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직접 나서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자 원·달러 환율도 버티지 못했다. 장중 1,057원90전까지 떨어지자 외환 당국이 미세조정에 나서면서 시장과 치열한 공방을 벌였지만 결국 1,060원을 지키지는 못했다.
다보스에서 촉발된 환율 공방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이 달러화 약세를 옹호하는 발언을 이어가며 외환시장 질서를 뒤흔들자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므누신 장관을 향해 날을 세웠다. 세계화를 상징하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때아닌 환율 공방이 벌어지면서 포럼 자체가 벌집을 쑤셔놓은 듯 발칵 뒤집힌 양상이다.
약달러는 미국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빚 부담을 줄여주지만 ‘환율전쟁’ 가능성을 높이고 미 국채의 매력도를 떨어뜨려 글로벌 외환보유액에 변화를 주는 등 국제 금융시장의 기존 질서(밸런스)를 뒤흔들 수 있어 우려된다.
라가르드 IMF 총재는 25일 아침 인터뷰에서 “(성장이 회복되는) 지금은 어떤 종류의 환율전쟁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약달러 선호 발언의 의미를 분명히 하라”고 므누신 장관을 압박했다.
총재는 이어 달러화와 가상화폐의 미래를 논하는 오전 세션 ‘글로벌 파이낸스 재건설’에서 므누신 장관과 만나 “글로벌 교역에 지장이 생기면 가장 중요한 성장도 훼손된다”면서 달러화의 입지 변동이 무역에 미칠 파장을 경계했다.
앞서 므누신 장관의 발언 이후 달러화 가치는 유로화 등 주요 통화 대비 3년 만에 최저치로 급락했다.
이에 대해 므누신 장관은 전일 발언을 굳히며 총재의 말을 맞받아쳤다. 그는 “단기적 환율은 관심거리가 아니다. 가장 큰 관심은 열린 교역”이라며 “미국의 3% 성장은 세계 시장 모두에 윈윈이 될 것”이라고 되레 교역상 이점을 주장했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가 무역 이슈를 넘어 환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세션의 초점은 미 달러화의 기축통화 입지가 더욱 약해질 것이라는 데 모아졌다.
이에 대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미 블랙록자산운용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는 “일본이나 이탈리아 등 재정적자국에 돈이 돌게 하려면 미국은 타국의 상황과 국제 기준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장관의 입장을 에둘러 비난했다.
투자전략가들도 “앞으로 달러 움직임을 지켜보라. 분명히 더 약세를 향해갈 것”이라며 국제 시장 질서에 아랑곳하지 않는 미국 우선주의의 파장을 경계했다.
<서울경제 다보스=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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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빈난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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