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의거 62주년이 다가오고 있다. 그 때 필자는 고교 1학년 학생이었다.
자유당시절 호의호식하던 분들에겐 달갑지 아니 하겠으나 엄연한 한국 현대사의 큰 획을 긋는 사건을 되돌아보고 배울 점이 무엇이 있나 생각해봄도 중요할 것 같다.
1960년 4월 19일을 전후 하여 일어난 사건 개요를 먼저 둘러볼 필요가 있겠다.
자유당의 2인자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한 전국적 부정선거(3월 15일)에 항거하는 최초의 마산 시위와 4월11일 고교 입학 준비생이던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됐다. 이에 항의하기 위해 4월18일 고려대생(3,000여명)들이 시위 후 고대 교정으로 돌아가던 중 종로 4가에서 정체불명 괴한들의 습격을 받는다.
다음날 4월 19일, 전국적 학생시위로 번진다. 4월26일에는 이승만대통령 하야 성명이 나오고 4월28일 이기붕 일가족이 자살했다. 5월에는 이승만 하와이 망명, 1965년 7월 19일 이승만 박사가 사망했다.
이 4.19의거로 인해 사망 185명, 부상 1,500여명으로 희생자가 집계됐다.
1960년 3.15 부정선거 이전 자유당 치하를 들여다 볼 것 같으면 마치 망하기 전 장개석의 중국, 고딘 디엠의 월남 패망 당시를 연상시켰다. 부패의 극한상태, 치맛바람(그 유명한 이기붕 부인 박 마리아), 정치깡패들의 호황기에다 곽영주 경무관(청와대 경호실장 역)과 김창룡 특무부대장 등의 횡포, 이 모든 총체적 문제들의 결과물이 4.19의거였다.
특히 그 때나 오늘날이나 권력자 주변의 인물들, 부인들의 문젯거리 기사들이 너무 난무했다. 대통령 경호 책임자들의 직분 이외 권력 남용도 심했다. 예를 들어 박정희 시절 때 대위 출신이던 차지철은 육군 중장 출신을 자신의 부하인 경호실 차장으로 두며 위세를 과시했다.
근래에는 차기 정권 경호 책임자 내정자가 일국의 국방장관 후보자를 추천했다는 보도는 국가질서 체계를 문란케 하는 징조가 아닌가 한다.
부패, 권한 외 월권행위, 배우자들의 망동 등은 인류 역사에서 늘 등장하는 나라들의 거덜 나는 단골 메뉴다. 정점에 있는 최고 지도자들의 무능과 주변 참모진들의 탈법행위는 삼위일체의 국가 패망의 독소라 할 수 있겠다.
4.19는 이러한 3대 독소에 항거한 순수한 학생의거로서 독재정권을 몰락시킨 세계 유일무이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 발전에 한 과정이라 하지만 기성세대들이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어리고 순수한, 젊은 학생들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세계에 보여준 쾌거요, 어두운 암흑세계를 희망과 가능성의 세계로 바꾸어놓은 장거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의거도 구태의연한 기성 정치인들의 배신(민주당 신구파 싸움)으로 단 1년 만에 박정희, 김종필의 5.16군사혁명을 초래하게 되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문성길 /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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