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타르 뇌물 스캔들에 EU 흔들, 로비스트 명부 등록 제3국 제외
▶ 카타르와 거래 고지할 필요 없어…미와 달리 로비스트 활동 비공개
에바 카일리 유럽연합(EU) 의회 부의장이 카타르 정부에서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벨기에 검찰에 기소된 대형 스캔들이 유럽을 흔들고 있다. 현직 고위 인사가 연루된 것도 충격이지만, 카타르가 EU 의회 의원을 매수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EU의 구멍 난 로비 문화가 지목됐기 때문이다.
로비는 입법 또는 정책 집행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이다. EU에서는 로비가 합법이다. 그러나 불법 로비를 차단할 제도엔 구멍이 뚫려 있었다. 특히 ‘의원은 예외’라는 특권 문화가 팽배했다. EU 행정부인 집행위원회와 비교하면, 유럽의회가 훨씬 느슨한 로비 기준을 적용해온 것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벨기에 검찰은 인권 탄압 국가인 카타르가 이미지 세탁 등을 목적으로 유럽의회에 접근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13일(현지시간)까지 카일리 부의장을 포함, 4명이 자금 세탁 및 부패 혐의로 기소됐다.
EU 회원국들은 “이번 사건을 개인 비리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자성하고 있다. ‘민주주의·인권의 첨단’을 자처한 EU와 유럽의회의 허술한 로비 문화가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EU는 로비스트 명부인 ‘투명성 등록부’를 관리한다. EU와 접촉하려는 로비스트들은 여기에 등록하고 감시를 받아야 한다. 13일 기준 1만2,447명이 등록돼 있다. 이익단체(8,215명), 비정부기구(3,532명), 연구기관·지방자치단체(676명) 등에 적을 둔 로비스트들이다.
그러나 유럽이 아닌 제3국의 관료는 등록 대상이 아니라는 데 허점이 있었다. 카타르 정부 관계자가 카일리 부의장에게 접근해 어떤 거래를 하더라도 고지할 의무가 없었다는 뜻이다. 사각지대 안에서 뇌물 수수가 이뤄진 것이다. 다니엘 프러인트 유럽의회 반부패 실무그룹 공동의장은 “제3국이 (사각지대를 악용해) EU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는지 드러났다”며 “제3국에 의한 로비도 관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등록된 로비스트라고 해도 활동 내역을 전부 공개할 의무가 없다는 점도 밝혀졌다. 로비가 활성화한 미국에선 로비스트가 고객과 맺은 계약 내용, 로비 목적 등을 일일이 공개해야 한다. EU가 로비스트의 업무를 회색 지대에 남겨둔 것은 로비와 입법 및 정책 집행 간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불법 행위가 싹틀 가능성을 키웠다.
2019년 1월 이후 유럽의회 의원들은 로비스트와 대화 내용을 녹취해 보고하게 돼 있다. 그러나 의무가 아니라 선택 사항이라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국제투명성위원회가 2019년 6월부터 올해 7월까지 분석한 바에 따르면, 룩셈부르크 출신 의원들은 녹취록을 100% 보고했지만, 그리스 출신 의원들은 10%밖에 보고하지 않았다.
유럽의회는 EU의 다른 기관에 비해 느슨한 로비 규칙을 적용했다. 집행위원회는 명부에 등록된 로비스트와의 접촉만 허용하지만, 의회는 그런 규제를 하지 않았다. 이번 스캔들의 중심에 있는 비정부기구 ‘파이트임퓨니티’는 ‘투명성 등록부’에 등록하지 않은 채 활동했다.
로비스트에게 제공받을 수 있는 선물 한도도 달랐다. 집행위원회 직원은 외부 인사로부터 연간 50유로(약 6만8,845원)까지만 받을 수 있지만, EU 직원은 연간 300유로(약 41만3,000원)까지 허용됐다.
의회 내 윤리자문기구 역시 유명무실하다. 국제투명성기구는 “의원, 직원들에 대한 처벌을 소극적으로 하는 관행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EU는 독립된 윤리기구 창설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이번 스캔들 이외의 부패 사건을 자체 조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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